그로부터 23년이 지난 2006년, 시나리오 작가가 된 소년 헤인스는 유니세프 관련 촬영장에서 유니세프 친선대사인 로저 무어를 다시 만났다. 헤인스가 23년 전 만남을 이야기하자 그가 말했다. “글쎄요, 기억은 안 나는데 제임스 본드를 만났었다니 좋았겠네요.” 촬영이 끝나고 헤인스와 단둘이 있게 되자 그는 주변을 살피더니 속삭였다. “니스에서의 만남을 당연히 기억하지. 하지만 사람들 있는 데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 그들 중 누군가가 블로펠드와 함께 일할지도 모르잖아.”
공항은 모순의 공간이다. 만남과 이별이 있고 설렘과 아쉬움이 교차하며, 여행의 시작과 끝이 이뤄지는 장소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공항이 어디인지에 대해서는 다툼의 여지가 있다. 독일은 1909년 비행선의 정기운항을 시작한 프랑크푸르트 인근의 체펠린하임을, 네덜란드는 1916년 개항한 암스테르담공항을, 프랑스는 1919년 개항한 파리의 르부르제공항을 내세운다. 그러나 1909년 라이트 형제가 설립한 미국 메릴랜드의 칼리지파크공항을 현재 운영 중인 가장 오래된 공항으로 간주하는 것이 보통이다.
전 세계 공항 이용객 40억 명
지난 100여 년간 항공산업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2017년 공항 이용객이 40억 명에 달하고 미국에만 약 1만5000개의 공항이 있다고 하니 그 발전 속도를 짐작할 만하다. 그럼 세계 최고의 공항은 어디일까? 컨설팅 기업 스카이트랙스는 ‘올해 최고의 공항’으로 싱가포르 창이공항을 꼽았다. 창이공항은 실내 정원과 폭포가 인상적이다. 호텔과 식당, 쇼핑 등 부대시설도 좋은 평가를 받는다. 7년 연속 세계 최고의 공항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다.
공항은 최첨단 시설의 상징이다. 그러나 모든 공항이 좋은 시설과 쾌적한 환경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세계 최악의 공항으로는 남수단의 주바공항이 꼽힌다. 주바공항은 썩어가는 물웅덩이 옆에 있는 텐트터미널이다. 비행기는 연발하기 일쑤여서 여행객들은 에어컨이 작동되지 않는 폭염 속에서 기다려야 한다. 출국 라운지에는 화장실도 없고 줄 서는 시스템도 없다. 외교관 친구들에 의하면 주바공항보다 더 열악한 공항이 있다. 바로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방기공항이다. 이 공항에는 울타리가 없어 기장은 이착륙 시 활주로를 가로지르는 사람을 발견하면 비행기를 급정거해야 한다.
선진국에도 불편한 공항이 상당수 있다. 벨기에 브뤼셀 남쪽의 샤를루아공항이 그 예다. 이 공항은 좁고 혼잡하며 편의시설도 부족하다. 많은 저가항공사가 이용하기 때문에 비행기들이 매우 이르거나 늦은 시각에 이착륙한다. 미국 공항의 경우, 9·11 테러 이후 보안이 강화되면서 승객들이 불편을 느낀다. 미국을 경유하는 승객은 공항에서 짐을 찾아 번거로운 입국 수속을 거쳐야 한다. 이런 불편 때문에 매년 수백만 명의 잠재적 관광객이 미국을 방문하지 않는다. 상당수 중남미 사람이 한국을 방문할 때 미국 대신 유럽을 경유하는 루트를 택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세계 최다 공항을 보유한 미국이지만 올해 조사에서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한 공항은 덴버공항으로 32위에 그쳤다.
인천공항, 동북아 허브로 성장하길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공항은 미국 조지아주의 애틀랜타 국제공항이다. 세계 최대 항공사인 델타항공과 사우스웨스트항공의 허브 공항으로 매년 1억400만 명이 이용한다. 2017년 인천공항 이용객이 6200만 명이었으니 그 규모를 짐작할 만하다.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공항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도로 알려진 볼리비아 라파스공항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공항은 중국 쓰촨성의 다오청야딩공항이다. 해발 4411m에 있어 고산증을 느끼는 사람들은 ‘비아그라’까지 복용해야 할 정도다.
매년 이용객이 5~10%씩 증가하는 가운데 주요 공항 간 경쟁이 치열하다. 작년 말 프랑스 건설업체 빈치는 영국에서 두 번째로 이용객이 많은 개트윅공항의 경영권을 인수했다. 2016년에는 캐나다의 연금펀드 컨소시엄이 런던 시티공항의 주인이 됐다. 일부 중동 국가는 정부 보조금을 무기로 자국 공항의 허브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인천공항은 올해 일본 도쿄 하네다공항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2004년부터 14년째 흑자를 기록 중이다. 작년 쿠웨이트공항의 제4 터미널 위탁 운영권을 따내 공항 운영 노하우에 대한 국제 경쟁력을 증명했다. 최근 수년간 여객 환승률과 화물 환적률이 떨어지고 있는 점은 우려된다. 인천공항이 신기술 도입과 다양한 노선 개발로 동북아시아 허브 공항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