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좌파 성향 싱크탱크가 집권 보수당 정부에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늦춰야 한다”고 경고해 눈길을 끌고 있다. 경기 호조에 45년래 최저 실업률을 보이고 있는 영국이지만 경기 침체가 언제 찾아올 지 모른다는 우려에서다.

30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영국 싱크탱크 레졸루션파운데이션은 “영국의 저소득 근로자들이 경기 침체가 다가오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며 “최저임금 인상에 보다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레졸루션파운데이션은 ‘반(反) 빈곤’을 표방한 좌파 성향 비영리기관이다. 일반적으로 최저임금 인상을 지지하는 좌파 성향의 연구기관에서 이같은 주장을 해 주목된다.

게다가 영국의 실업률은 올 1분기(1~3월) 3.8%로 1974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1분기 고용률은 76.1%로 역시 사상 최고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영국 경제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불확실성에도 호조를 보이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레졸루션파운데이션은 “이같은 경제 호황이 지속될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정책 입안자들은 추가 인상을 두고 기로에 서 있는 최저임금에 보다 신중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가파르게 오르는 영국 최저임금. 영국 노동부
가파르게 오르는 영국 최저임금. 영국 노동부
영국의 올해 25세 이상 근로자 시간당 최저임금(생활임금)은 8.21파운드(약 1만2300원)다. 21~24세에 적용되는 최저임금은 시간당 7.7파운드(약 1만1500원), 18~20세는 6.15파운드(약 9200원)로 법정 하한선이 정해져 있다. 영국의 최저임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에서도 최상위다.

그러나 영국 내에선 인상폭이 가파르다는 점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015년 이후 최저임금 인상폭은 25%에 달한다. 전임 조지 오스본 영국 재무장관은 2015년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25세 이상 전일제 및 시간제 임금 근로자들에게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시간당 9.35파운드(1만4000원)까지 올려주겠다고 밝혔다. 시급 9파운드는 영국 전체 중간급여의 60% 수준이다.

영국 최저임금제는 토니 블레어 전 총리 집권 시절이던 1999년 처음 시행됐다. 당시 정해진 최저임금은 시간당 3.60파운드였지만 이후 최저임금은 평균 소득보다 빠른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필립 해먼드 영국 재무장관은 올 들어 전임 오스본 장관의 최저임금 정책을 두고 재검토에 들어갔다. 해먼드 장관은 “우리는 영국에서 저임금을 끝내자는 야망과 소득분배를 통해 생산성을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저임금 노동자의 고용 기회도 보장해야 하기 때문에 보다 조심스럽게 접근할 것”이라고 밝혔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