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어를 유일한 공용어로 지정한 우크라이나의 조치에 반발하며 20일(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를 요청했지만 서방 국가들이 이를 거부했다. 이날은 우크라이나의 새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 날이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새 정부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유엔 안보리를 활용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안보리는 이날 러시아가 요구한 우크라이나의 새 공용어법에 대한 회의 소집에 대해 절차투표를 통해 부결시켰다. 회의 소집을 위해서는 15개 안보리 이사국 가운데 9개국의 찬성이 필요한데 5개국의 동의를 얻는데 그쳤다.

안보리 이사국 중 러시아와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적도 기니, 도미니카공화국만 회의 개최에 찬성했다. 반면 미국과 영국, 프랑스, 독일, 폴란드, 벨기에 등은 반대표를 던졌다. 반대국들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정부가 우크라이나 새 대통령 취임식 날에 맞춰 회의를 열려는 것은 취임식을 훼손시키려는 의도”라고 비난했다.

지난달 대선에서 승리한 코미디언 출신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20일 우크라이나 대통령으로 공식 취임했다. 안보리 이사국들은 러시아의 회의 소집 제안에 날짜를 우크라이나 대통령 취임식 후 20일 후로 정하자고 했지만 러시아는 이를 거절했다.
앞서 우크라이나 의회는 지난달 25일 우크라이나어를 유일한 국가 공용어로 하는 법률을 채택했다. 우크라이나는 앞으로 정부기관과 법원, 군대, 학교 등 공공생활 공간에서 우크라이나어를 필수적으로 사용하도록 의무화하고 이를 어길 경우 처벌하기로 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에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하는 국민들이 상당수 있어 친러시아 성향 야당 등에서 반발이 나오고 있다. 바실리 네벤쟈 유엔주재 러시아 대사는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어가 추방당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어를 공용어로 지정하는 것은 민스크 협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민스크 평화협정은 2015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에서 교전 중단과 평화 정착에 합의하고 맺은 협정이다.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신임 대통령 ‘길들이기’를 시도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볼로디미르 옐첸고 유엔주재 우크라이나 대사는 “신임 대통령 취임식 당일에 안보리 회의 소집을 요구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라며 “러시아가 안보리를 통해 신입 대통령에게 압박 메시지를 보내기 원했다”고 지적했다.

한편 젤렌스키 신임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의회를 해산하겠다”고 선언하며 개혁에 시동을 걸었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