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포퓰리즘의 치명적 중독성
베네수엘라. 한때 남미 독재정권의 숲에서 거의 유일하게 민주주의 나무가 뿌리를 내린 것으로 보였던 나라, 세계 매장량 1위인 석유가 가져다준 풍요를 구가했던 나라, 그래서 주변국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나라. 이 나라가 지금 극심한 경제난과 정치적 혼란을 겪고 있다.

그동안 수입에 의존했던 식품, 생필품, 의약품은 공급이 급감했다. 외화 수입의 96%를 차지했던 석유 수출액이 급감한 때문이다. 국제 유가가 하락한 데다 설비 투자 부족으로 석유 생산이 줄어든 탓이다. 당연히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베네수엘라 국회가 지난 1월 9일 발표한 2018년 물가상승률은 169만8488%에 달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물가상승률이 1000만%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한다. 국민 평균 체중이 10㎏ 이상 줄어들 정도로 극심한 식품 부족으로 인해 매일 수만 명의 베네수엘라 국민이 먹을 것을 찾아 이웃나라 국경을 넘고 있다. 이미 외국으로 탈출한 사람도 전체 인구의 10%를 넘었다.

급기야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두 번째 6년 임기를 시작한 지 13일이 지난 1월 23일, 수도 카라카스에서 열린 반정부 집회에서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은 자신이 과도 정부의 ‘임시 대통령’이라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미국을 비롯한 유럽연합(EU) 주요국, 브라질과 콜롬비아 등 중남미 우파 정부 등 50여 개국이 과이도 의장을 임시 대통령으로 인정하면서 ‘반(反)마두로 포위전선’을 구축했다.

이쯤 되면 마두로 정권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왜일까? 그것은 외신이 제대로 전하지 않는 다른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마두로 정권을 타도하려는 세력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에 맞서 마두로 정권으로 대표되는 ‘우고 차베스의 유산’을 옹호하는 집단이 온존한다는 점이다. 반정부 시위대에 맞서는 친정부 시위대도 있고, 무엇보다도 군부 내에 마두로를(즉 차베스를) 지지하는 세력이 압도적이다. 지난달 30일 과이도 의장이 군인 30여 명과 함께 영상을 통해 군사봉기를 촉구했지만 군의 지지를 얻는 데 실패했다. 바로 여기에 경제 파탄과 국제사회의 포위에도 불구하고 마두로 정권이 버티고 있는 비밀이 있다.

차베스는 포퓰리즘 정책을 통해 지금의 베네수엘라 위기의 씨앗을 뿌린 장본인이다. 기득권 세력에 대한 불만을 타고 집권한 그는 1999년부터 2013년 사망 때까지 노골적인 분배주의 정책을 추진했다. 석유 판매로 벌어들인 돈을 무상 교육, 무상 의료 등 포퓰리즘 정책에 쏟아부었다. 복지 지출은 국내총생산(GDP)의 (예산이 아니다) 40%를 넘어섰다. 동시에 설탕이나 식용유, 휴지 같은 생활필수품 가격은 강력하게 억제했다. 반(反)시장적인 물가 억제 정책은 기업 활동을 크게 위축시켰고, 결국 많은 업체가 생산 활동을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그나마 고유가 시절에는 수입으로 줄어든 국내 생산을 메울 수 있었지만 마두로가 집권한 뒤 석유 생산 감소와 석유 가격 하락으로 이런 정책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게 됐다. 국가 재정은 파탄 나고 정부는 돈을 찍어내 재정적자를 메움으로써 인플레이션에 불을 댕겼다.

베네수엘라의 진짜 비극은 이런 상황에서도 마약 중독자들이 처음 각성했던 상태를 잊지 못하듯이, 아직도 많은 사람이 차베스 시절을 그리워한다는 데 있다. 포퓰리즘이 무서운 것은 이처럼 사람들의 사고와 태도를 영원히 바꿀 만큼 중독성이 크다는 점이다. 포퓰리즘의 유산을 청산하려는 수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남미 여러 나라에서 포퓰리즘 정권이 거듭 되살아나는 것은 포퓰리즘의 중독성이 얼마나 강한지를 웅변한다.

물론 포퓰리즘의 결말은 경제 파탄이다. 공짜 아닌 공짜에 맛들인 사람들은 파이를 키우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그저 남이 만들어 놓은 파이를 나눠 갖는 데만 골몰하기 때문이다. 정도와 방법에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좌우 정당 모두 분배부터 앞세우고 있는 우리나라도 남미의 전철을 밟고 있는 것은 아닌가 걱정한다면 필자 혼자만의 기우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