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고령화로 사회보장비까지 천정부지
기업투자 돕고 내수 일어나게 규제 풀어야
안세영 < 성균관대 특임교수·국제협상학 >
지난 2년간의 정책을 그대로 강행하면 장기적으로 우리나라는 ‘영국병’과 ‘일본병’을 앓게 되고 국민경제를 떠받치는 산업과 재정의 기반이 붕괴된다. 외환위기야 쓰나미처럼 한 번 휩쓸고 지나가면 그만이지만, 산업공동화와 재정파탄이 일어나면 미래 세대 국민들의 꿈까지 앗아간다.
우선, 강성노조와 반(反)기업정책 때문에 집권 후 너무 많은 기업이 해외로 빠져 나가고 있다. 1970년대 노동당 정부 때 영국에서 일어난 ‘기업 대탈출’과 비슷한 현상이다. 국내투자는 부진한데, 지난해 해외투자는 478억달러로 1980년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특히 중소기업의 해외투자가 지난 3년간 두 배로 증가해 100억달러를 넘어섰다. 이건 단순히 경영환경 악화 때문만이 아니다.
주 52시간 근무 등을 법정사항으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까딱 잘못해 고발당하면 기업인이 범법자로 전락하는 정부 정책 탓이 크다. 과거엔 일자리를 창출해 나라에 기여한다는 기업보국(企業報國)의 긍지가 컸던 기업인들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남을 고용하는 것이 ‘잠재적 범법자의 길’로 들어선 것과 같다고 자조한다.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하는 우리나라는 ‘일본형 장기 디플레이션 터널’의 입구에 와 있다. 일단 터널에 들어가면 일본의 경험에서 보듯이 극심한 내수침체와 재정적자가 국민경제를 괴롭힌다. 요즘 장사가 안된다고 아우성인데 단순한 경기침체 때문이 아니다. 고령화로 우리 경제가 구조적 내수침체의 늪에 빠지고 있는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선 모든 정책의 우선순위를 내수진작에 둬야 한다. 예를 들면 미국처럼 조세부담률을 낮춰 기업과 가계가 보다 많이 투자하고 소비하게 만드는 것이다. 특히 일본은 소비여력이 큰 중상층의 지갑을 열기 위해 상속세, 보유세 등을 대폭 낮춰 오늘날 경제회복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런데 우리는 정확히 거꾸로 가고 있다. 법인세율과 아파트 공시가격을 올려 중상층의 보유세, 종합소득세 부담을 늘림으로써 기업투자와 소비여력을 고갈시키고 있다.
다음에 찾아오는 위협은 재정파탄이다. 고령화로 세수는 줄어드는데 노인의료비, 연금, 복지 등 3대 사회보장비용은 폭증한다. 일본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사회보장비 비중이 1990년대 14%였는데 2015년부터 30%대를 넘어섰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중이 230%를 넘어 빚더미에 올라앉은 일본 정부는 엄청난 사회보장비를 충당할 수 없어 매년 국채를 발행해 메우고 있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우리 미래도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 이미 ‘문재인 케어’로 8년 만에 적자로 돌아선 국민건강보험기금이 2026년이면 바닥을 드러낸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미래세대의 부담 아래 지금 세대가 의료혜택을 누리는 꼴이 된다. 우리는 부모세대가 흘린 땀과 눈물 덕분에 잘살고 있다. ‘단군 이래 가장 잘사는 이 나라’를 우리 다음 세대에 물려줘야지 부채를 떠맡겨서는 안 된다.
문 대통령이 ‘인간 중심의 사회’를 만들겠다고 했는데 이를 위해선 우선 기업이 이 땅에 있어야 한다. 글로벌 시대 정부와 기업 간 관계는 철새와 같다. 정부가 반기업 정책을 고집하면 더 많은 기업이 철새처럼 해외로 날아갈 것이다.
마지막으로 홍남기 경제부총리 같은 국고관리자는 아무리 정치인이 나랏돈을 풀려고 해도 함부로 금고 문을 열어선 안 된다. “왜 우리에겐 시리아 철군에 반대하며 스스로 사직한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 같은 소신 있는 각료가 없을까?” 어려울 때 한 나라의 경제사령탑쯤 됐으면 자리에 매달리기보다는 용기 있게 대통령에게 직언하는 소신을 가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