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중국 광저우의 한 아파트 단지. 2층에서 사람들이 급히 바깥으로 탈출하고 있다. 1층 상가의 함석지붕 위로 뛰어내리기도 하고, 사다리를 타고 빠져나오기도 한다. 먼저 탈출한 사람들은 아직 2층 안에 있는 이들에게 “빨리 나오라”며 손짓한다.

아파트에 불이 났거나 건물이 무너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필사의 탈출’을 감행하는 이들은 단속반에게 잡히지 않으려는 짝퉁 판매 상인들이다. 샤넬과 구찌, 프라다 등 명품 가방 짝퉁과 롤렉스, 태그호이어 등의 명품 시계 짝퉁이 이들의 주요 판매 품목이다.

이들은 “프랑스나 스위스 현지에서 생산된 반제품 혹은 완제품을 들여오기 때문에 생김새는 물론 품질까지 원 제품과 동일하다”고 주장한다. 제품을 사면 홍콩 면세점에서 발급한 영수증까지 끼워준다. 물론 영수증에는 짝퉁 제품의 10배, 20배에 달하는 진짜 명품 가격이 찍혀 있다.

길거리와 지하철에서 짝퉁 샤넬, 구찌백을 든 행인들을 쉽게 마주칠 수 있는 광저우지만 짝퉁에 대한 단속은 강화돼 왔다. 짝퉁 명품을 살 수 있는 것으로 유명했던 광저우 시내 쇼핑몰에서는 고급 명품 브랜드를 위장한 제품은 찾기 힘들다. 짝퉁 명품 상인들은 주위 주택가로 숨어들었다. 바깥에서 보면 일반 아파트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면 짝퉁 명품이 진열돼 있다. 이날 단속이 아파트 단지에서 이뤄진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개혁개방 초기부터 제조업이 발달했으면서 홍콩이 가까워 해외 유통에 유리한 광저우는 중국 내 짝퉁 제품의 대부분이 생산되고 거래되는 지역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3월 세계 짝퉁 거래액이 2016년을 기준으로 5090억달러(약 609조원)에 이르렀다며 이중 중국이 50%, 홍콩이 25%를 차지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홍콩은 자체적인 제조 인프라가 없는만큼 홍콩에서 거래된 짝퉁 제품은 광저우 등 광둥성 일대에서 제조됐다고 분석할 수 있다. 중국 거래액의 상당 부분도 마찬가지다. 광저우와 광둥성 지역 정부가 여러 차례에 걸쳐 짝퉁 근절을 선언하면서도 지역 경제 타격을 우려해 적극적으로 나서기 힘든 이유다.

이날 현장만 봐도 단속 당국의 복잡한 속내를 살필 수 있다. 정말로 짝퉁 명품 상인들을 소탕하고 싶었다면 백주대낮에 행인들이 뻔히 지켜보는 앞에서 상인들이 빠져나가도록 뒀을 리가 없다. 도망갈 구멍을 열어놓고 보여주기식 단속을 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현지 소식통은 “한국측이 요청하지 않아도 광저우 공안이 먼저 ‘한국 제품을 위조 판매한 일당을 잡았다’며 알려오는 등 짝퉁 단속 의지가 높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그렇다고 지역경제의 중요한 축인 짝퉁을 완전히 근절하겠다는 의지에는 이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광저우=노경목 특파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