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걸프만의 戰雲은 어디로 흐를까
걸프만에 또다시 전운이 감돌고 있다. 미국이 지난달부터 이란산 원유 거래를 전면 금지하자 이란이 중동 석유수송로의 병목 지점인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공언하고 나섰다. 이에 미국이 항공모함과 패트리엇 포대를 중동으로 급파하면서 전쟁 직전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많은 전문가가 양국 간 전쟁 가능성을 낮게 보지만, 최근 필자가 보고 온 이란 상황은 견디기 힘들 정도로 악화되고 있었다. 작년까지 하루 250만 배럴을 유지하던 이란의 원유 수출량은 최근 130만 배럴로 떨어졌다. 이는 미국의 전방위적인 압박에 더 줄어들 전망이다. 석유수출 의존도가 큰 이란 경제에는 심각한 타격이다. 물가상승률은 40%대로 치솟았고 환율은 작년 달러당 4만5000리얄에서 최근 12만리얄로 치솟았다.

이전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는 국제사회와 합의해 중동평화의 핵심 의제인 이란 핵협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산업용 및 연구용 핵주권을 일부 인정하면서 이란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완전한 사찰과 감시를 허용한다는 것이었다. 그 대가로 30년 이상 지속된 대(對)이란 경제제재를 점진적으로 해제해주기로 합의했다. 영국, 프랑스, 독일에 러시아, 중국까지 포함해 서로 윈윈하는 세기의 빅딜을 성공시킨 것이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은 달랐다. 이란과의 핵협상을 다른 동맹들과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파기해 버렸다. 세상의 평화보다는 눈앞의 자국 이익을 택했다. 미국인의 표심을 자극해 재선가도를 유리하게 닦기 위해서는 이란이라는 ‘악의 축’이 필요하고, 세상의 흐름을 등지고 있는 이란 신정정권의 존속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래서 트럼프는 역사상 그 누구도 하지 못한 무리한 협상조건을 명분으로 내걸었다.

첫째, 이란은 모든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을 폐기할 것. 둘째, 시리아로부터 군대를 철수시킬 것. 셋째,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걸프국가들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 행사를 중단할 것. 넷째, 레바논의 헤즈볼라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하마스, 예멘 후티 반군에 대한 지원을 중단할 것 등이다. 어느 것도 이란이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에서 퇴로를 차단한 최후통첩인 셈이다.

미국이 대이란 압박정책을 추진하는 데는 그만큼 자신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우선 셰일오일 혁명을 주도하는 미국이 더 이상 중동 산유국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의지가 반영됐다. 이는 기존 석유패권을 가진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이라크, 러시아 중심의 에너지 판도가 셰일오일의 경제적 추출 기술을 보유한 미국 중심으로 급속히 이동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는 트럼프 주변 참모들 사이에 뿌리 깊게 깔려있는 반(反)이란 정서와 이란 정권 교체론자들의 영향력이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친이스라엘 복음주의 보수파는 트럼프 당선 이전부터 이란을 지도에서 지워야 한다고 생각해온 사람들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철천지 원수였던 이스라엘과 사우디를 화해시키고 대이란 공동 군사협력체제를 구축하게 했다.

물론 이런 상황까지 몰린 데는 이란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이라크를 자신 편에 끌어들이기 위해 반미 성향의 말리키 총리를 지지했고, 시리아의 아사드 독재정권을 지키기 위해 일찌감치 내전에 참여했다. 레바논 헤즈볼라에 대한 군사지원은 물론 사우디에 대항하기 위해 예멘 내전에도 깊숙이 개입해 중동 전체의 불안정성 증폭에 한축을 담당했다. 아랍 민주화 투쟁을 호기로 삼아 이란 중심의 지역 패권 구도를 재편하려는 무모함이 결국 미국을 자극하게 된 주요 원인이다.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며 자국 이익에 집착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거침없는 행보와 독불장군식 대외정책은 한반도 문제를 둘러싼 우리의 대응과 자세에도 의미심장한 교훈을 던진다. 남북한 문제는 당사자끼리 해결할 수 있는 국내 문제가 아니라, 미국이 열쇠를 쥐고 철저히 자신의 의지대로 끌고 갈 것이라는 점이다. 남북 화해와 협력의 최우선적 전제조건이 한·미 공조와 공동의 이익 합치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