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유료방송 발목잡는 퇴행적 사전규제
지난해 6월 일몰된 유료방송 시장 점유율 합산규제의 재도입 논의가 국회에서 계속되고 있다. 언론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합산규제 폐지에 따른 사후규제 방안’을 제출받아 합산규제 재도입 여부를 결정하려던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가 사후규제안을 마련해 최근 과기부에 전달했다고 한다.

규제안에는 사업 규모와 시장 점유율을 기준으로 유료방송의 시장지배적 사업자를 정해 그 사업자에 대해 요금인가제를 도입하고 방송·통신 결합상품의 판매를 금지하는 방안이 포함됐다고 한다. 이런 규제 방안은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기준을 정하는 작업의 난점은 차지하고라도 유료방송 시장의 동태적 경쟁상황을 무시하고 소비자 선택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어 부적절하다 할 수 있다.

사전에 규모나 점유율을 기준으로 시장지배적 사업자를 정하고 그에 대해 요금 인가 등 별도의 규제를 가하는 것은 과거 한국을 포함한 다수 국가가 통신 시장의 독점 현실과 공공성 회복을 근거로 시행했다가 경쟁 활성화와 기술 변화에 따라 폐지하거나 축소한 전통적인 규제다. 이는 일몰된 합산규제와 마찬가지로 유료방송 시장의 동태적 경쟁상황에 부합하지 않고 기업의 성장을 인위적으로 가로막는 경직적인 사전규제라 평가할 수 있다. 각국의 통신규제 사례에서 보는 바와 같이 특정 사업자가 압도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해당 시장의 경쟁상황이 정태적이어서 가까운 장래에 그 지위에 변화를 초래할 만한 경쟁자나 상황 변동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나 적합한 규제다.

한국 유료방송 시장 상황은 어떤가? 전국적으로 3개의 인터넷TV(IPTV) 사업자와 1개의 위성방송 사업자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 78개 방송구역별로 92개의 종합유선방송사업자가 활동하고 있는데 이 중 상당수는 5개 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에 속해 있다. 대다수 방송구역에서 5개의 유력 사업자 간 경쟁이 치열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방송통신위원회가 발표한 2018년 국내 방송 시장 경쟁상황 평가에 따르면 종합유선방송사업자의 점유율은 점차 감소하는 반면, IPTV 사업자 간 경쟁은 매우 치열해져 이들 간 격차가 추세적으로 좁혀지고 있다. 3개 IPTV 사업자는 각자의 장점을 활용한 경쟁 전략을 펼치고 있다. 종래 KT는 초고속인터넷이나 계열 위성방송과의 결합으로 시장을 공략해 1위를 차지했다. SK 계열은 자사가 지배적 지위를 점하고 있는 이동통신과의 결합을 통해, LG유플러스는 유력한 OTT(온라인동영상) 서비스와의 제휴 등을 통해 콘텐츠 경쟁력을 강화함으로써 그 격차를 줄여나가고 있다.

더욱이 국내 유료방송 시장은 가까운 장래에 급격히 변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모든 IPTV 사업자가 유선방송사에 대한 인수합병(M&A)을 추진함에 따라 대대적인 시장구조 개편이 불가피하다. 넷플릭스 외에도 유튜브, 디즈니 등 유력 콘텐츠를 장악한 OTT 사업자가 한국에 진출해 유료방송 시장 전반의 경쟁구도가 기존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으로 변화할 전망이다.

이 같은 유료방송 시장의 동태적 경쟁상황과 변화에 비춰볼 때 지금의 정태적인 시장구조에 기반한 규제는 근시안적이고 퇴행적일 수밖에 없다. 유료방송 사업자들이 급격한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한국 유료방송산업 전체가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도록 돕는 정책당국의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