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기업인의 재능과 富 재투자되는 '기업가 리사이클링' 일어나야 제조업 산다
“독일과 일본의 제조업 경쟁력은 기술에만 있지 않습니다. 기업이 보유한 경영 재능과 부가 지역경제에 다시 투자되는 기업가 재투자(앙트레프레뉴리얼 리사이클링·entrepreneurial recycling) 환경이 경제 전반으로 확산돼야 합니다.”

이재하 대구상공회의소 회장(삼보모터스 회장·사진)은 15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독일과 일본의 제조 경쟁력 비결은 기업의 기술 및 경영 노하우 승계를 통한 스케일업과 장수기업의 육성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한국에선 기업의 승계를 ‘부의 대물림’으로 여기는 시선이 많다”며 “돈이 많은 개인의 상속과 달리 기업 승계는 더 많은 고용을 창출한다”며 기업 승계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을 촉구했다.

이 회장은 “독일의 인더스트리 4.0과 4차 산업혁명 기술을 배우려는 열풍도 좋지만 제조업이 장수기업으로 승계되는 기업 환경에도 주목할 때”라고 지적했다. 2011~2015년 독일의 평균 가업상속공제제도 이용실적이 1만7000건이 넘는 반면 한국은 60여 건에 불과하다.

이 회장은 “일본은 지난해부터 한시적으로 기업 승계제도를 시행하고 있다”며 “우리도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율을 대폭 낮추고, 가업상속공제요건을 획기적으로 완화해 일본과 독일처럼 100년 기업이 많이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은 100년 이상 지속된 기업이 3만 개가 넘지만 한국은 6개뿐이다. 이 회장은 “장수기업을 많이 만들고 기업들이 스케일업을 통해 고성장기업이 되면 고용도 늘고 위기에 처한 지방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지난해 3월 대구상의 23대 회장으로 취임한 이 회장은 역대 어느 회장보다 상공회의소 회원 기업의 연구개발(R&D) 역량 강화와 가업승계제도 개선에 집중하고 있다. 이 회장은 “앙트레프레뉴리얼 리사이클링, 즉 기업의 경영 노하우와 재능, 부가 R&D와 가업 승계로 재투자되는 ‘기업가 재투자’ 환경이 조성되지 않고서는 어떤 지역이나 나라도 경제를 성공시킬 수 없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취임 이후 대구상의 전 임직원을 현장으로 보냈다. 어떤 기관보다 기업현장을 많이 알아야 하는 기관이 상공회의소라는 판단에서다. 이 회장은 대구연구개발특구본부 등 R&D 기관의 수장을 만났다. 산업현장을 발로 누비며 R&D 지원사업을 회원사에 안내하고 기업들이 R&D와 관련해 겪고 있는 실질적인 어려움을 하나하나 파악했다.

그는 지난달에는 대구상의에 R&D지원팀을 신설했다. R&D 기관과 기업 간 간담회도 정기적으로 열어 기업 규모별 지원정책을 잇따라 내놨다. 중소기업 대상으로는 ‘기업 R&D과제 코디 지원사업’과 ‘소공인 제품·기술 경쟁력 향상 지원사업’을 시작했다. R&D과제 코디 지원사업으로 40개 기업이 혜택을 받고 있다. 중견·중소기업에는 ‘첨단기술기업 발굴’과 ‘연구소 기업지원 설립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공공기관이 확보한 기술을 기업에 이전해 사업화하는 것이다. 대구상의는 대구연구개발특구본부와 함께 올해 연구소 기업을 20~30개 설립할 계획이다.

이 회장은 “자동차 기계부품산업이 주력인 대구·경북은 4차 산업혁명 요소기술 분야에서 대전환을 성공적으로 이뤄낼 수 있어야 한다”며 “기계와 자동차 부품 분야 기업대전환 펀드를 중앙과 지방정부, 기업이 함께 조성해 대구를 산업구조 혁신의 세계적인 모범사례로 만들자”고 주장했다.

이 회장이 이끄는 삼보모터스는 국내 중견기업 가운데 독일의 인더스트리 4.0이나 스마트팩토리에 가장 근접한 모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 회장은 “과거에는 기업 대표가 단체장을 맡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앞선 기술 덕분에 단체장을 하면서도 기업 경영을 잘 챙길 수 있는 시대가 됐다”고 소개했다. 이 회장은 인터뷰 중간중간 국내외 생산현장을 스마트폰 앱(응용프로그램)으로 보여줬다. 회사가 개발한 앱으로 체코 프라하와 충남의 생산라인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 회장은 “이 앱은 납품하는 차량의 길이 막히면 어디로 우회하라는 메시지까지 기사에게 알려준다”고 소개했다. 삼보모터스는 해외에서 부품에 문제가 생겼다는 메일이 오면 즉시 문제가 현장으로 전달돼 개선된 부품을 바로 보낸다. 빠르고 정교한 스마트팩토리 시스템 덕분이다. 이 회장은 “스마트팩토리를 갖추지 않으면 글로벌 기업과 거래하기 어렵다”며 “스마트팩토리 보급에도 대구상의가 적극 나서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구=오경묵 기자 okmo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