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사고의 원인 규명이 늦어지면서 관련 업계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정부가 조사 결과 발표 전까지 ESS 가동을 중단해 달라고 요청·권고하면서 신규 발주가 사실상 중단됐기 때문이다.

배터리 생산업체가 먼저 직격탄을 맞았다. LG화학은 지난 1분기(1~3월) 전지사업부문에서 1479억원의 적자를 냈다. 설비 점검 비용 외에 가동 중단에 따른 손실 보상 등을 위한 충당금 800억원, 국내 출하 전면 중단에 따른 손실 400억원 등 ESS와 관련한 손실만 1200억원에 달했다. 삼성SDI의 1분기 영업이익은 1188억원으로 전 분기보다 52.2% 줄었다.

전력변환장치(PCS) 등을 생산하는 전력 솔루션 업체 상황도 좋지 않다. PCS는 에너지를 저장하는 배터리와 함께 ESS를 구성하는 핵심 부품이다. LS산전의 1분기 영업이익은 287억원으로 전년 동기(554억원) 대비 반토막 났다.

지난해 상반기 ESS 관련 매출이 전년 동기의 10배 수준으로 급증한 효성중공업은 직원 무급휴직까지 시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ESS 설치 등을 맡아온 중소·영세 업체는 도산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정부가 다음달 초 사고 원인을 발표한다고 해도 안전 규제를 강화한 새 인증절차 수립 등 관련 제도 정비는 오는 8월께나 이뤄질 전망이다. 업체들의 피해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ESS업계 관계자는 “새롭게 인증받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 ESS 신규 발주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실내와 달리 야외 신재생에너지 발전설비에 설치하는 제품은 인명 피해 우려가 적은 만큼 이들 제품 규정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