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올해 1분기 경제(GDP) 성장률이 -0.3%로 곤두박질치는 참사가 벌어졌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았던 2008년 4분기(-3.3%) 후 10년3개월 만의 최저 성장률이고, 1분기 기준으로는 16년 만의 마이너스 전환이다. 작년 말 집중된 재정 투입의 약발이 다하고 ‘반도체 착시’마저 걷히자 성장엔진이 사라진 한국 경제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는 평가다.

발표된 지표를 뜯어보면 ‘기록적 부진’이라는 말 외에는 적당한 표현을 찾기 힘들 만큼 온통 ‘빨간불’이다. 투자·소비·수출 관련 지표가 일제히 추락해 ‘올 것이 오고 있다’는 두려움을 증폭시킨다. 설비투자는 감소율이 10.8%에 달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1분기 24.8% 감소한 이래 84분기 만의 최악이다. 민간·정부 소비 증가율도 각각 12분기, 16분기 만에 가장 낮았다. 수출은 -2.6%로 5분기, 수입은 -3.3%로 30분기 만의 부진을 겪었다. 탁상에서 마련한, 검증되지 않은 이른바 ‘소득주도 성장’에 대한 수많은 전문가와 여론의 경고를 무시하고 밀어붙인 결과라는 점에서 혹독한 비판이 불가피하다.

정부의 기대와 경제의 실상이 전혀 다르다는 점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문재인 대통령이 “생산 소비 투자가 올 들어 모두 증가하고 지표들이 개선됐다”는 평가를 내린 게 지난달이었다. 정부의 공식 경제전망을 담는 ‘그린북 3월호’도 “긍정적인 모멘텀”을 강조했다. 정부 최상층부의 판단이 불과 한 달 뒤를 못 본 것이라면 ‘자격 미달’을 따지지 않을 수 없다. 알고도 딴말을 한 것이라면 더 이해하기 힘들다.

정부는 긴급 관계장관회의를 소집하는 등 부산하게 움직였지만 제대로 된 반성과 해법은 찾아보기 힘들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예상보다 대내외 여건이 더 악화됐다”는 뻔한 말 외에 별다른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한국은행은 “유난히 날씨가 따뜻해 의류소비가 줄었다”는 걸 주요인으로 꼽았다. 같은 여건에서 미국 중국 등이 탄탄한 성장을 기록 중이라는 점에서 앞뒤가 맞지 않는 설명이다. 해법으로는 ‘추경 조속 집행’ 등 뻔한 재정 확대를 다시 거론했다. 이번 쇼크가 작년 4분기 과도한 재정 투입의 역효과라는 측면이 있음에도 또 재정을 앞세우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한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거의 모든 나라가 뒷걸음질칠 때도 ‘플러스 성장’을 지켜냈다. 불과 10년 만에 그 저력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음이 드러났다. 근본적인 경제체질의 개선이 시급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2분기 이후 재정조기집행 효과가 본격화되면 개선될 것”이라며 낙관론을 거두지 않고 있다. 상장사의 14.8%가 번 돈으로 이자도 감당하지 못하는 한계기업이라는 현실을 마냥 외면하고 있다.

보고 싶은 지표만 보는 자세로는 좋은 대책이 나올 수 없다. 재정 중독은 잠시 효과를 낼지언정, 결국 장기불황을 부르는 독약이 될 것이란 경고를 지금이라도 새겨들어야 한다. 133조원의 투자로 43만 개의 ‘세금 내는’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그제 삼성전자의 발표에 답이 있다. 정부가 시장을 설계할 수 있다는 과욕을 버리고 기업을 뛰게 하는 발상의 전환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