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삼성 노조, 민노총 가입 '시동'…"장기파업 사태에 기름 붓나"
르노삼성자동차 노동조합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에 가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나섰다. 민노총과 본격 합세할 경우 파업이 장기화하는 등 사태가 더 꼬일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생산절벽’에 직면한 르노삼성은 이달 말 일시적으로 공장 가동을 중단(셧다운)할 예정이다. 연내 생산직 근무 형태를 하루 2교대에서 1교대로 전환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이다.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이 뒤따를 경우 르노삼성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본지 4월 8일자 A1, 8면 참조

민노총 가입 저울질하는 노조

10일 업계에 따르면 르노삼성 노조가 이르면 올 상반기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 가입 안건을 조합원 찬반투표에 부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금속노조는 국내 최대 산별 노조다. 상급단체에 소속되지 않은 개별 기업 노조인 르노삼성 노조가 금속노조에 들어가면 상급단체인 민노총 산하로 편입된다.

르노삼성 노조 관계자는 “이르면 올 상반기, 늦어도 하반기 초반에 금속노조 가입 안건을 조합원 찬반투표에 부칠 것”이라며 “노사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 상황을 지켜본 뒤 구체적인 시기를 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회사 고위 관계자는 “이르면 내달 중순 찬반투표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전망에 따라 대책을 논의 중”이라고 했다.

르노삼성 노조는 한국 자동차업계에서 ‘모범생’으로 통했다. 툭하면 파업하는 다른 완성차업체 노조와 달리 2015~2017년 3년 연속 파업하지 않고 임단협을 마무리했다. 노조가 ‘돌변’한 건 작년 10월부터다. 기본급을 대폭 올려 달라며 파업을 반복했다. 지난해 12월 박종규 새 노조위원장이 취임하면서 노조는 더 강경해졌다.

박 위원장은 2011년 직원 50여 명을 모아 기존 노조(상급단체에 소속되지 않은 기업 노조)와 별개로 복수 노조인 금속노조 르노삼성지회를 설립하기도 했다. 이후 세력 확장에 실패하자 탈퇴해 현 기업 노조위원장에 올랐다.

역대 최장기간 파업을 벌이고 있는 르노삼성 노조에 민노총이 가세하면 사태가 더 꼬일 것이란 전망이 적지 않다. 임단협에 초점이 맞춰졌던 노사 협상이 정치적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업계 관계자는 “민노총이 본격적으로 끼어들면 파업은 더욱 과격해지고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며 “향후 프랑스 르노 본사와 동맹 관계인 닛산 등으로부터 주문 물량을 따내기도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7개월째 54차례 파업

르노삼성 노조는 이날 다시 부분파업에 들어갔다. 지난 9일 25차 노사 교섭이 결렬되면서 투쟁 깃발을 올렸다. 지난달 25일 부분파업 이후 16일 만이다. 기본급 인상을 요구해온 노조는 지난달 말부터 △작업 전환배치 때 노조 합의 △신규 직원 200명 채용 △시간당 표준 생산량(UPH) 축소 등 다른 요구안까지 들이밀면서 교섭은 교착상태에 빠졌다. 회사 측 협상을 대표해온 이기인 제조본부장(부사장)은 책임을 지고 사의를 밝히기도 했다. 이 회사 노조는 지난해 10월부터 이날까지 7개월째 54차례(218시간) 파업했다.

대가는 혹독했다. 르노삼성은 올 1분기 3만8752대의 차량을 생산하는 데 그쳤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2% 쪼그라들었다. 닛산이 장기 파업을 이유로 올해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로그 위탁 물량을 기존 연간 10만 대에서 6만 대로 40%가량 줄이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로그 생산 계약이 끝나는 오는 9월 이후엔 공장 가동률이 50% 밑으로 떨어질 공산이 크다. 르노삼성은 내년부터 생산할 신차(XM3)를 유럽에 수출(연간 8만 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지만, 르노 본사의 ‘OK’ 사인이 나지 않고 있다.

벼랑 끝에 몰린 르노삼성은 이달 말 닷새가량 일시적으로 공장 가동을 중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생산·판매량이 모두 줄고 재고가 쌓인 데다, 인건비와 설비 유지비 등 고정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연내 부산공장 생산직(1800여 명) 근무 형태를 기존 하루 2교대에서 1교대로 전환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노조의 덫에 빠진 車업계

르노삼성뿐만이 아니다. 국내 자동차업체 대부분이 ‘노조 리스크’에 시달리고 있다. 현대자동차 노조는 향후 정년퇴직자 대체 인력을 정규직으로 채워 달라는 요구를 내세우며 투쟁 수위를 높여 나갈 태세다. 기아차 노조에선 일부 대의원이 나서 SUV인 텔루라이드 등 해외 생산 차종을 국내로 들여와 생산해야 한다는 요구까지 하고 있다. 잠잠하던 한국GM 노조는 지난 3일 중앙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 신청을 하고 파업권 확보 절차를 밟고 있다.

자동차업계에선 ‘노조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생산절벽의 골이 더욱 깊어질 것이란 우려를 내놓고 있다. 이미 지난 1분기 국내 자동차 생산량(95만4908대)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1분기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파업이 반복될 경우 ‘마지노선’으로 여겨져온 연 400만 대 생산체제가 무너질 것이란 예상까지 나온다. 감원 위기가 현실화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장창민/박상용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