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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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3월 정주주총회에서도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감사를 선임하지 못한 기업들이 속출했다.

5일 상장사협의회에 따르면 주총에서 의결 정족수 부족으로 안건이 부결되는 기업수는 급증하는 추세다. 2017년 9개사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 76개사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는 187개 기업으로 늘어났다.

문제는 앞으로도 감사선임 부결 회사가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업계에서는 상법 개정을 통해 의결정족수 변경, 의결권 행사 기준일 축소 등으로 주총 성립 요건을 낮춰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3%룰 개정에 대해서도 학계는 주주의 경영 감시 기능이 활성화된다는 전제 아래 필요성을 인정했다.

◆1963년 태생 상법, 현대화 '필요'

업계는 주주총회 성립을 위해 의결정족수 요건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감사선임 등 보통결의의 의결정족수는 발행주식 총수의 4분의1 찬성과 출석 주식 수 과반의 찬성으로 규정돼있다. 외국과 같이 출석 주식수를 기준으로 출석 주식수의 과반이 찬성하거나, 전체 주주의 25% 출석에 출석 주주의 25% 찬성으로 요건을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상장사협의회는 의결정족수 완화를 놓고 법무부와 얘기하고 있다.

정우용 상장사협의회 전무는 "주주총회 성립 자체가 안되는 건 제도의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며 "의결정족수 기준을 미국 영국 일본처럼 완화해야 주총이 성립되지 않아 피해를 보는 기업들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은 3%룰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3%룰은 상장사의 감사·감사위원을 선임할 경우 지배주주가 의결권이 있는 주식의 최대 3%만 행사할 수 있도록 제한한 규정이다. 한국에만 존재하는 제도다.

김종선 코스닥협회 연구정책본부장은 "매년 주총이 다가오면 기업들은 본업을 제치고 의결권 모으기에 바쁘고, 의결권 대행기관까지 쓰고 있다"며 "이는 수익성 하락으로 결국 배당을 받는 주주들의 피해로 이어지는 만큼, 주주총회가 열릴 수 있도록 3%룰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전무는 "3%룰을 아예 없애는 것 자체가 어렵다면 비율을 5%, 10% 정도로 높여서 보완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학계에서도 3%룰 개정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형규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주요국은 이사·감사 선임, 재무제표 승인 등 일반적인 사항에 대해선 대부분 출석 주주 의결권의 과반수로 처리하고, 합병 분할 영업양도 등에 대해선 특별결의로 하고 있다"며 "우리도 세계 추세에 맞춰 감사 선임 등 일반적인 사항 의결 시엔 정족수를 출석 과반수로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박경서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교수도 "국내 기업들의 내부 경영진이나 지배주주들의 부당한 행위를 적절히 견제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기 때문에 3%룰을 유지하되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외부 주주의 견제권과 소액주주들의 주권이 보호되는 상황 아래 지배주주들을 감시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등 외부 주주의 견제 역할이 활성화되고 의미있는 주주 제안들이 꽤 늘고 있다"며 "주주의 경영 감시 기능이 더욱 활성화되고 지배주주 일가가 스스로 사익 추구 행위들을 자제하는 현상이 관찰되면 3%룰 개정을 논의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3% 룰 폐지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개인투자자 비중이 높은 국내 주식시장의 환경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서다. 국내 주식시장에서 개인투자자 비중은 거래량 기준 67%에달한다. 미국 주식시장에서 개인투자자 비중은 35%라는 점을 감안하면 꽤 높은 수준이다.

송민경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스튜어드십코드센터장은 "외국에선 3%룰이 없지만 모든 기관투자자들은 주총에서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소송을 당할 수 있어 이전부터 꼭 참여해왔다"며 "개인투자자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 특성상 3%룰이 폐지되면 기업들이 마음대로 주총을 좌지우지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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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들 투표행사율도 높여야

현재 상법을 주주들의 투표 행사율을 높이는 구조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90일인 의결권 행사 기준일을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기주총에서 의결권을 행사하려면 작년 말을 포함해 3개월 이상 주식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이는 한국 개인투자자들의 주식 보유기간을 감안하면 기준일이 지나치게 길다는 말이 나온다. 통상 개인투자자들의 코스닥 종목 보유 기간은 3.1개월로, 코스피 7개월보다 절반 이상 짧다.

현재 우리나라 의결권 행사 기준일은 다른 나라와 비교하더라도 지나치게 긴 편이다. 송민경 센터장은 "호주와 영국은 2일, 상대적으로 기간이 긴 미국도 7일에 불과하다"며 "우리나라도 단축돼야 할 필요가 있다"고 있다.

관련해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4월 상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주총 소집 통지 기한을 2주 전에서 4주 전으로 늘리고, 주주에게 의결권을 행사할 권한을 부여하는 기준일을 3월 내에서 2개월 등으로 변경하는 내용이 골자다.

의결정족수 찬반 투표율을 공개해서 주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자는 제안도 있다. 국회의원이나 지방 선거에서의 투표율 공개는 유권자의 투표권 행사를 진작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46개 회원국 중 26개 나라에서 주주총회 찬성 반대 기권 득표율 현황을 공시하도록 돼 있다. 영국 미국 호주 등도 여기에 해당한다. 영국의 상장 회사는 회사 대표 웹사이트에 각 의안별로 의결에 참여한 유효 주식수, 찬성·반대 주식수, 보류 주식 수를 공지하고 있다. 상당 규모의 반대 득표를 한 안건이 있을 경우, 회사는 주총 결과를 공지할 때는 해당 안건의 반대 득표와 관련해 어떠한 행동을 할 것인지 설명해야 한다.

송민경 센터장은 "주총 때마다 찬반 투표율을 알려주면 주주들이 '내가 투표해야 안건이 찬성되겠구나', '부결이 될 수 있으니 막아야겠다'는 인식을 하게 될 것"이라며 "주주들의 알권리 확보에도 중요하며, 주주와 자연스럽게 소통하면서 안건이 부결되는 위험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어 "현재는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주요 주주들만 공시하는 요건도 확대하면, 의결권 행사에 나서는 기관투자자들도 더 늘어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총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도 다변화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김종선 본부장은 "현 시대에 맞춰 상법을 개정해 주주들이 이메일로도 투표할 수 있도록 해주고, 카카오TV 등을 통해 생중계하면서 찬반 투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며 "주총에서 회사가 주주들의 질문도 받는 자리로 만든다면 주주들의 참여도가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고은빛·이소은·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silverligh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