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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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정기주주총회에서 상장사 10곳 중 1곳이 의결정족수 미달로 주총 안건이 부결됐다. '3% 룰'과 섀도보팅 폐지 등으로 인해 감사 선임안 부결도 속출했다. 이 경우 기존 감사를 연임시킬 수밖에 없어 독립성 문제가 지적된다. 기업 입장에서는 관리종목을 피하기 위한 비용 부담도 골칫거리다.

◆ 상장사 9.4%, 정족수 미달로 주총안건 부결

5일 한국상장사협의회에 따르면 지난 3월까지 정기주주총회를 연 상장사 1997곳 중 의결정족수 미달로 안건이 부결된 곳은 9.4%인 187개사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스피 31곳, 코스닥 156곳 등이다. 2018년 3.9%에 비해 1년 새 2배 이상 많아진 셈이다.

GS리테일을 비롯해 대부분의 기업이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감사나 감사위원을 선임하지 못했다. 남광토건 역시 정기주총에서 감사선임 안건이 의결정족수 미달로 부결됐다고 지난달 27일 공시했다.

남광토건 관계자는 "감사선임이 어려울 것 같아 직원 10명이 의결권 교부를 위해 주주들을 찾아다녔지만, 집에 없는 주주들도 많아서 필요한 정족수를 채우지 못했다”며 “전자투표제 도입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감사 선임 안건이 부결된 주요 원인으로는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최대 3%까지만 인정하는 '3% 룰'이 꼽힌다. 감사 및 감사위원을 뽑으려면 발행 주식 25%의 찬성을 받아야 하는데 대주주의 의결권이 3%로 제한되기 때문에 추가로 22%를 확보하지 못하면 감사를 새로 선임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 3% 룰·섀도보팅 폐지가 원인

3% 룰은 1962년 상법 제정 때 지배주주의 전횡을 막겠다며 정부가 도입한 제도다.

도입 당시에는 주식 거래가 많지 않아 문제되지 않았으나, 1989년 코스피지수 1000선 돌파 후 주총에 관심이 없는 소액주주가 급증하면서 부작용이 발생했다. 의결정족수 미달로 감사·감사위원을 새로 선출하지 못하는 기업들이 등장했다. 지금까지도 기업의 소액주주 주총 평균 참석률은 매년 10%를 넘기지 못하는 실정이다.

1991년 섀도보팅(Shadow Voting·의결권 대리 행사)이 도입으로 이러한 부작용이 보완되기도 했다. 섀도보팅은 주총에 참석하지 않은 주주의 투표권을 대리로 행사할 수 있는 제도다. 주총 참석자가 적어도 한국예탁결제원이 주총 참여 주주의 찬성 및 반대 비율대로 의결권을 행사해 감사 및 감사위원을 선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부가 주주의 의결권 행사 보장 등을 이유로 2018년부터 셰도보팅을 폐지했고 다시 문제가 불거졌다.

3% 룰과 관련된 상법 개정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어서 이런 사태는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업계는 앞으로 감사 선임이 부결되는 기업이 더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정우용 한국상장사협의회 전무는 "섀도보팅 폐지 전인 2017년에 앞당겨 선임한 감사들의 임기가 만료되는 내년에 감사선임 대란이 예상된다"며 "내년 의결정족수를 못채워 안건이 부결되는 상장사는 238개에 달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 전자투표 한계, 행사율 5%

대안으로 전자투표제가 도입됐지만 참여율이 저조해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전자투표제는 주주가 인터넷이나 모바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달까지 정기주주총회에서 전자투표 서비스를 이용한 12월 결산법인은 564개 회사로 전년 대비 늘었지만 주주들의 전자투표 행사율은 5.04%에 그친 것으로 집계됐다.

소액 주주들의 무관심과 보안상 문제, 접근성 등이 참여율 저조의 원인으로 거론된다. 특히 코스닥기업은 주식 보유 기간이 짧은 만큼 전자투표제 도입 효과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보통 개인투자자들의 코스닥 종목 보유기간은 3.1개월로, 코스피 7개월보다 절반 이상 짧다. 작년 말까지는 주식을 가지고 있어 의결권은 있지만, 이미 주식을 팔아버려 주총에 관심이 없어진 것이다.

아난티는 전자투표제를 도입했음에도 이번 주총에서 감사 선임에 실패했다. 회사 관계자는 "이렇게 감사선임에 부결되는 회사들이 많아지면 기관 쪽에서 회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안 좋아질 것같다"고 우려했다.

◆ 감사 중립성 결여, 비용 부담도 문제

감사 선임을 하지 못한 기업들은 기존 감사를 기약없이 연임시킬 수밖에 없는다. 이 경우 독립성 문제가 지적된다. 감사는 사무나 업무의 집행, 재산의 상황, 회계의 정당성 여부를 조사하는 자리로 중립성을 띠어야 한다.그러나 오래 재임할 경우 독립성이 확보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재직 기간이 길어지는 만큼 회사와 유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는 사외이사의 재임기간이 9년을 초과하면 독립성이 훼손될 여지가 있다고 보고 재선임안에 대한 반대 의사를 밝히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비용도 부담이다. 통상 감사를 선임하지 못하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된다. 전자투표제도 도입,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 기관투자자 등에 대한 의결권행사 요청, 그밖에 주주총회 성립을 위한 조치 등을 취할 경우는 예외다. 즉 관리종목으로 지정당하지 않으려면 의결권 대리행사 등을 위한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것이다.

한 상장사 관계자는 "결국 주주의결권 위임 대행업체에 용역을 맡길 수밖에 없는데, 안건당 1억원 정도의 비용이 들어간다"고 토로했다.

이소은·고은빛 한경닷컴 기자 luckyss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