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선적 육퉁호(아래)가 지난해 10월 28일 공해상에서 제3국 선박과 불법 원유 거래를 시도하고 있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 보고서 캡처
북한 선적 육퉁호(아래)가 지난해 10월 28일 공해상에서 제3국 선박과 불법 원유 거래를 시도하고 있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 보고서 캡처
유엔의 제재를 회피하려는 북한의 수법이 한층 교묘해졌다. 특히 유엔이 2017년 북한 정권의 ‘생명줄’인 원유와 정유제품 수입량을 각각 연간 400만 배럴과 50만 배럴로 제한하자 해상에서의 불법적인 선박 간 환적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대북제재위원회는 12일(현지시간) 연례보고서에서 “석유제품의 불법 환적이 지난해 크게 늘었다”며 북한 선박 육퉁호를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육퉁호는 같은 모양의 배를 인도양 코모로 제도 국적의 하이카호로 등록해 아프리카 인근에 정박시켜 놓고 동중국해를 항해하며 파나마 선박인 것처럼 선박자동식별장치를 바꾸는 등 ‘선박 스푸핑(위장)’ 수법을 총동원했다. 제재위는 “육퉁호와 하이카호는 같은 조선사가 같은 해에 건조한 쌍둥이 선박”이라며 “선박 위장은 사전에 주의깊게 기획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선박 간 환적 때 통신 수단으로는 ‘중국판 카카오톡’으로 불리는 중국 텐센트의 위챗이 쓰였다. 제재위는 “중국 위안화 지폐의 마지막 네 자리 숫자를 사진으로 찍어 위챗으로 전송하는 방식으로 (선박 간에) 서로 신원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공해상에서 거래된 석유제품이 북한에 들어가는 창구로는 남포항이 꼽혔다. 해상의 선박에서 남포항의 수입 터미널로 연료를 옮기는 과정에선 수중 송유관이 사용됐다.

지난해 9월 평양 남북한 정상회담 때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함께 탄 벤츠 리무진.
지난해 9월 평양 남북한 정상회담 때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함께 탄 벤츠 리무진.
불법 무기 거래도 북한 정권의 ‘돈줄’ 역할을 했다. 제재위는 불법 무기 거래, 군사 협력 등으로 27개국이 대북제재 위반 여부를 조사받고 있다고 밝혔다. 이 중 알제리, 앙골라, 보츠와나, DR콩고, 이집트, 리비아 등 아프리카 국가가 16개에 달했다. 북한은 DR콩고의 금광사업에 개입했을 뿐만 아니라 대통령 경호부대에 화기를 제공하고 군사훈련을 지원한 의혹도 받고 있다.

북한이 군사 협력 분야에서 가장 짭짤한 수익을 올리는 나라 중 하나로는 이란이 꼽혔다. 북한 무기 수출업체인 청송연합과 조선광업개발무역회사가 이란에 현지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제재위는 북한이 사이버 해킹을 통해 달러는 물론 가상화폐까지 탈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이버 해킹은 북한 정보당국인 정찰총국이 주도하고 있다. 북한 해커들은 2018년 5월 칠레 은행을 해킹해 1000만달러를 빼돌렸고, 같은 해 8월에는 인도의 코스모스은행에서 1350만달러를 빼내 홍콩 소재 북한 관련 회사에 자금을 이체했다. 북한이 2017년 1월~2018년 9월 아시아에서 최소 5차례에 걸쳐 가상화폐거래소를 해킹해 5억7100만달러를 빼돌렸다는 분석도 있다고 제재위는 소개했다.

북한은 외화벌이를 위해 중국 어선 등에 어업 면허권도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재위는 2개 유엔 회원국이 북한이 발급한 어업 면허권을 소지한 15척 이상의 중국 어선을 조사했다고 밝혔다. 북한 인근 해역에서 조업하는 중국 어선은 200척에 이르며 어업 면허료는 한 달에 5만위안(약 840만원)인 것으로 전해졌다.

대북제재위 전문가 패널로 참여한 휴 그리피스는 AFP통신에 “대북제재가 북한 김정은(국무위원장)을 궁지에 몰아넣었다”며 “이에 따라 북한이 제재 우회 시도를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