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꿈과 비전
‘세계 일류, 글로벌 톱, 인간중심….’

기업의 비전을 둘러보면 이런 단어들이 단골로 액자에 넣어져 박제처럼 사장실 벽을 장식하고 있다. 개인의 삶과 마찬가지로 기업 경영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꿈이요 희망이다. 그 꿈과 현실을 잇는 가교가 비전(vision)이다. 비전은 미래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현재는 불가능하지만 그것이 구성원의 열정을 바쳐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음을 지속적으로 설득하는 메시지다. 그래서 비전은 액자 속 구호가 아니라 구성원의 가슴속에 살아 움직이면서 실패를 극복하는 희망과 새로운 도전을 불러일으키는 두근거림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에 비전은 구체적이고 동시에 이타적이어야 한다.

초등학교 사생대회에 참가한 두 아이가 있다. 한 아이에게 묻는다. “그림을 참 잘 그리는구나. 네 꿈은 무엇이니?” 이에 아이가 “내 꿈은 피카소처럼 많은 사람이 발견하지 못한 아름다움을 전해주는 화가가 되는 것입니다”라고 말한다면, 그 생각의 대견함에 누구나 네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할 것이다. 다른 아이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을 때 “네, 저는 열심히 그림을 그려 피카소처럼 유명해지고 돈을 많이 벌 거예요”라고 했다면 대부분의 사람은 “그림을 팔아서 부자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란다”라고 충고하며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초상화를 그려주는 가난한 화가를 떠올릴 것이다. 두 아이는 같은 미술가를 닮으려 한다. 그러나 한 아이는 그림의 의미를 추구하고, 다른 아이는 그림을 성공의 수단으로 여긴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나노의 비전은 ‘맑은 공기’다. 20년 전 나노 기술을 이용해 세계의 공기를 맑게 하겠다는 당찬 꿈을 품고 창립했다. 그리고 초미세먼지의 가장 큰 원인 물질인 질소산화물을 무해한 질소로 전환시키는 나노 촉매 필터를 제조하는 글로벌 기업을 만들어냈다. 모든 연료는 공기중에서 연소하면 질소산화물이 발생한다. 나노가 국내에서 제조한 필터는 국내외 화력 발전소, 선박 엔진, 소각로, 산업용 보일러 등의 대형 오염원에서 배출되는 질소산화물을 제거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한국의 미세먼지는 중국 영향도 크다. 중국에 설립한 나노케미칼에서는 나노 기술을 이용해 나노 사이즈 촉매 원료 분말을 제조하고 있다. 이 나노 원료를 촉매필터를 제조하는 중국 국유기업과 상장기업에 공급해 중국의 공기를 맑게 하고 있다. 인도에는 나노의 촉매필터 제조 기술을 인도 최대 국영 발전설비 회사에 전수하고 첫 번째 촉매 필터 제조 공장을 현지에 지어줌으로써 인도의 공기를 맑게 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기업은 업의 본질에 맞는 이타적인 비전을 세워 꿈을 이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