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이전까진 국내에서 먹는 물 판매는 불법이었다. 일부 민간사업자들이 'OO수(水)'라는 이름으로 관리·감독 받지 않은 생수를 무분별하게 팔고, 이를 마시고 건강에 이상을 느낀 소비자들이 문제를 제기하자 정부는 1995년 관련법('먹는 물 관리법')을 만들고 먹는 샘물 시장을 본격적으로 감독했다.
국내에서 먹는 샘물 시장이 새로 생기자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인 건 제주도였다. '제주도=깨끗한 자연'이라는 소비자 이미지를 활용하자는 공감대가 도내에서 일었다.
김인규 제주도개발공사 초대 사장은 취임 이듬해인 1996년 먹는 샘물 공장을 착공하고 관련 사업을 준비했다. 그리고는 1998년 한라산 중산간에서 지하수를 끌어올려 첫 먹는 물 제품을 만들었다. '삼다수'였다.
시장에는 그보다 1년 앞서 나온 제품이 있었다. 롯데칠성의 '아이시스'였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음료왕국' 롯데칠성의 아이시스 대신 '제주 삼다수'를 찾았다.
'제주'라는 브랜드는 소비자들에게 희소 가치가 있었다. 주문 수요를 맞추지 못할 정도로 팔려나갔다. 2008년 삼다수는 증산을 결정했고 먹는 샘물 시장에서 점유율은 50%를 넘길 정도로 치솟았다.
그러던 삼다수의 아성이 최근 흔들리고 있다. 잊혀졌던 아이시스에 의해서다. 2일 시장조사전문기관 닐슨에 따르면 2015년 45.1%를 기록했던 삼다수의 점유율은 2016년 41.5%, 2017년 41.5%로 정체를 보이더니 지난해(1~11월 기준)에는 40.2%까지 떨어졌다.
2000년대 중반 이후 한 번도 40% 밑으로 떨어져 본 적이 없었던 삼다수의 '마의 점유율'이 깨지기 직전까지 내려온 것이다.
반면 아이시스의 시장점유율은 2015년 8.2%, 2016년 9.7%, 2017년 10.0%로 꾸준히 오르고 있다. 지난해(1~11월 기준)에는 13.1%까지 증가했다. 삼다수의 잃어버린 점유율을 아이시스가 고스란히 가져오고 있다.
아이시스는 삼다수가 하지 못하는 부분을 공략했다. 삼다수는 오직 제주도 안에서만 생산되는 탓에 물량이 한정적이고 유통이 느리다는 단점이 있었다.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야 하기 때문이다.
또 자체 유통망이 없기 때문에 제주도 밖에서는 삼다수를 대신 팔아줄 위탁 유통업자를 찾아야 했다. 2017년 제주도개발공사가 삼다수의 위탁 판매업체를 '소매용'(광동제약)과 '도매용'(LG생활건강)으로 이원화 한 것은 세밀한 유통이 부족하다고 판단해서다.
아이시스는 다양한 채널로 소비자를 공략했다. '브랜드'에서 삼다수에 밀린 부분을 소비자에게 '편의성'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보완하는 전략을 세웠다.
소비자들이 돈을 주고 물을 구매하는 것이 보편화되자, '정수기 물 대신 미네랄이 함유된 생수를 가정에서 주문해 먹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롯데는 판단했다. 2013년 직영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첫 정기 배송 서비스를 시작했다. 미리 신청을 해놓으면 생수의 음용 주기에 맞춰 배달해줬다.
정기 배송은 지역 거점 물류 센터와 골목 곳곳까지 들어갈 수 있는 세밀한 유통망이 있어야 가능했던 서비스였기 때문에 롯데가 선점하는 것이 가능했다.
두 번째는 1인 가구 공략이었다. 롯데는 혼자 사는 가구인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있는 것을 확인한 뒤 기존 가정용 시장의 강자였던 2L 제품은 점점 판매량이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롯데는 2013년 500mL를 보완할 제품으로 300mL 제품과 기존보다 두께를 줄인 '미니' 제품 등 총 2가지를 내놨다. 2017년에는 1인 가구가 부담 없이 구매할 수 있는 1L 제품과 어린이를 위한 소용량(200mL) 제품까지 출시했다.
경쟁업체들이 '수원지(샘물이 나오는 근원이 되는 곳) 마케팅'에 열을 올리는 동안 오히려 '목 넘김 마케팅'이라는 새로운 전략을 들고 나온 것도 소비자에게 관심을 끈 부분으로 꼽힌다.
롯데는 2011년 아이시스 이름을 '아이시스8.0'으로 바꿨다. '8.0'은 평균 pH가 8.0인 약알칼리성 물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알칼리성 미네랄이 함유된 경도(물의 세기) 50∼60mg/L의 물로 마실 때 목 넘김이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