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자 천국에 닥친 금연규제 - 10년 전과 달라진 도쿄의 일상

30조엔 창출 산업에 '암반규제' 안된다…日 "일단 해보라"
일본은 ‘흡연자의 천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담배에 관대했다. 주점은 물론 대부분 식당과 커피숍 등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내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금연규제가 강화되는 모습이다. 학교, 병원, 관공서 등을 비롯해 주요 대형 건물의 실내금연이 의무화됐다. 2020년 4월까지는 중대형 음식점 등으로 금연구역이 확대될 예정이다. 거리 흡연도 지방자치단체별로 금지하는 곳이 늘고 있으며 길거리 흡연자의 안식처가 됐던 편의점 앞 재떨이도 철거 바람이 불고 있다.
30조엔 창출 산업에 '암반규제' 안된다…日 "일단 해보라"
지난 19일 일본 후쿠오카 주오구 덴진잇초메에 있는 ‘세렌클리닉 후쿠오카’. 암환자들을 대상으로 세포 치료를 하는 병원이다. 곳곳에 한글로 쓰인 안내문이 나붙어 있었다. 고즈미 다쿠야 원장은 “한국에서는 NK세포라는 면역세포를 이용한 세포 치료가 불법이지만 일본에선 합법”이라며 “한국인 환자가 늘기 시작해 최근엔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불법, 일본에선 합법

세포 치료는 원격의료와 더불어 일본에서는 가능하지만 한국에선 할 수 없는 의료 서비스의 대표 사례다. 의료 분야뿐만 아니다.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도 대대적인 규제개혁이 이뤄지고 있다.

세렌클리닉 후쿠오카가 주력으로 하는 세포 치료 기술은 한국 기업인 엔케이맥스가 개발했다. 환자 혈액에서 암세포에 대항할 수 있는 면역세포인 NK세포를 추출한 뒤 배양해 다시 주입하는 방식이다. 엔케이맥스는 국내에서 의료법에 막히자 일본에 법인을 설립하고 상용화를 시작했다.

한국은 세포 치료를 의약품으로 간주한다. 일반적인 신약 개발처럼 수천억원의 비용이 드는 대규모 임상시험을 거쳐 안전성과 약효를 입증해야만 처방을 허용하고 있다. 반면 일본은 줄기세포를 배양 증폭하는 과정이 안전한지 여부만 검증한다. 나머지는 의사 재량과 환자 선택에 맡긴다. 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한국인 환자 김모씨는 “비슷한 병을 앓고 있는 주변 사람들이 한국의 의료 규제에 넌더리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30조엔 창출 산업에 '암반규제' 안된다…日 "일단 해보라"
3호까지 나온 샌드박스…한국은 무소식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서 확산되고 있는 원격의료 역시 한국에서는 불가능한 의료 서비스 중 하나다. 일본은 2015년 의사와 환자 간 원격의료를 사실상 전면적으로 허용했다. 2017년 5월에는 아베 신조 총리가 직접 도쿄 총리관저에서 283㎞ 떨어진 병원의 의사에게 원격으로 진찰을 받는 시연을 해 보이기도 했다.

아베 정부는 규제개혁을 성장 전략의 하나로 추진하고 있다. IoT, AI 등 2020년까지 30조엔(약 309조원)의 부가가치를 창출할 4차 산업 육성을 위한 선결과제라는 판단에서다. 아베 총리는 작년 10월 규제개혁추진회의에서 “4차 산업혁명으로 세계는 크게 변화하고 있다”며 “암반처럼 단단한 규제와 제도를 부수고 개혁을 진행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가 출시될 때 일정 기간 기존 규제를 면제, 유예해주는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발 빠르게 시행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 21일 블록체인 개발업체인 크립토개라지의 가상화폐 신결제시스템을 규제 샌드박스 적용 대상으로 지정했다. 세 번째 선정이다.

지난달 샌드박스 1호로 파나소닉의 고속전력선통신(PLC)을 활용한 가전기기 IoT 실증계획을 승인한 데 이어 벤처기업 마이신의 온라인 진료 서비스인 크론도 지정했다. 반면 한국은 이제서야 산업계를 상대로 설명회를 열고 있다. 이에 앞서 일본은 2013년 국가전략특구법을 의회에서 통과시켰다. 특정 지역에 한해 미래기술, 의료, 도시재생 같은 특정 분야의 규제를 풀어주는 제도다. 현재 도쿄권, 간사이권 등 10개 특구를 지정해 운영 중이다.

자율주행차 상용화는 가시적인 성과가 임박했다. 마에바야시 가즈노리 도쿄도 첨단사업추진담당과장은 “여야 간 이견이 없어 올봄에 도로교통법 개정안 등의 의회 통과가 확실시된다”고 말했다. 이 법이 시행되는 내년에는 운전자가 운전 중 스마트폰을 사용하거나 책을 읽는 것 등이 가능해진다.

후쿠오카·도쿄=서정환/임락근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