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연초부터 답안나오는 이슈만 던지는 정치권
정치권이 연초부터 해결이 쉽지 않은 난제(難제題)들을 정치권 의제로 쏟아내고 있다. 선거제도 개혁, 국회선진화법 손질, 적자국채 발행 국정조사 등은 여야가 어느 한쪽의 양보를 얻어 합의해야만 가능한 이슈지만 정치권이 머리를 맞대기는 커녕 ‘면피성’ 목소리만 높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지난 3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정치개혁의 핵심은 선거제 개혁이고, 더 나아가서 개헌까지 해야 한다”며 “선거제 개혁의 대원칙은 정당득표율과 비례로 (정당별) 의원 수를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1, 2, 3안이 요약돼 있고, 그 중 하나가 될 것은 분명하다”며 “그게 무엇이 될 것이냐는 앞으로 여론 추이를 보면서 힘을 합해서 해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선거의 룰을 바꾸고 권력구조에 변화를 두는 일은 국회의장으로서 당연히 언급할 수 있는 사안이다. 하지만 문제는 ‘특별위원회’인 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사실상 상설위원회처럼 매년 가동되고 있음에도 좀처럼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선거제 개혁과 개헌은 총선을 불과 1년 4개월 여 앞둔 시점까지도 여야가 진통을 겪고 있다. 특히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 등 야 3당이 주장하고 있지만 원내 1·2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과 온도차가 큰 상황이다.

여당도 난제를 더하고 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같은날 주재한 기자간담회에서 국회선진화법 자체를 손보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이번에 (시립유치원 회계투명성 강화를 위한) ‘유치원 3법’에서도 봤지만 의원 한 명과 한 정당이 반대하면 과반 수가 넘어도 법을 통과시킬 수 없는, 국회 선진화법에 의한 의사결정 구조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홍 원내대표는 이 같은 폐단을 막기 위해 패스트트랙을 최장 ‘60일 내’ 처리하도록 한 국회법 개정안(최재성 의원 발의)을 당론 입법해 처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돼도 상임위 심사 180일 등 본회의 처리까지 최장 330일이나 걸려 실효성이 떨어지는 것을 바로잡겠다는 취지다.

‘패스트트랙’이라고 이름붙여졌지만 사실상 ‘슬로우트랙’이라는 비판을 듣는 선진화법을 뜯어고치겠다는 것이지만 문제는 2014년부터 매년 이 문제가 제기됐다는 점이다. 국회 관계자는 “야당 입장에서는 국회선진화법이 여당의 국정과제 입법을 막을 수 있는 장치인 만큼 쉽게 허용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법 개정안 자체가 발의되면 여야가 또 정쟁의 홍역에 휩싸일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자유한국당이 나경원 원내대표 체제 출범 이후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적자국채 발행 국정조사’ 및 ‘KBS 수신료 납부 거부운동’ 역시 한국당 단독으로는 처리가 쉽지 않은 이슈다.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 폭로로 인해 적자국채 발행 과정에서의 청와대 외압설이 제기됐지만 해당 의혹을 모두 규명하려면 일단 기획재정부를 피감사기관으로 두고 있는 기획재정위원회가 열려야 한다. 현재 기재위원장은 민주당 소속인 정성호 의원이다. KBS 수신료 이슈 역시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가 다뤄야 하지만 이 역시 위원장이 노웅래 민주당 의원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각자가 내세우고 있는 이슈들은 모두 여야 전격 합의 없이는 단 한발도 진전할 수 없는 것들”이라며 “쉽지 않은 걸 알면서도 어려운 숙제를 던지는 이유는 각 진영의 지지층에게 ‘할 만큼 했다’는 호소를 하며 나름의 면피를 하기 위한 시도”라고 분석했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