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분쟁까지 퇴출 잣대로 삼는 코스닥委
‘레모나’로 잘 알려진 경남제약 소액주주들은 연말 불안에 떨고 있다. 코스닥 기업심사위원회(기심위)가 지난 14일 상장폐지 결정을 내리면서 내년 초 코스닥위원회(위원장 길재욱)의 최종 심의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소액주주 5000여 명은 회사 지분 71.86%를 쥐고 있다. 1520억원어치다. 거래가 정지된 지 벌써 10개월째다.

올해 코스닥 상장폐지 실질심사는 예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정해졌다. 지난 3월 코스닥위원회가 실질심사 심의·의결을 맡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전원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코스닥위원회는 상장 승인과 퇴출이란 막강한 권한을 부여받았다. 이들은 과거와 달리 기업의 사업성뿐 아니라 경영권 분쟁, 지배구조 등도 실질심사 잣대로 삼고 있다.

잇단 기심위 ‘상폐 결정’ 배경은

2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이후 코스닥 상장폐지 실질심사에 오른 기업들은 기심위 단계에서 한 곳도 ‘상장유지 결정’을 받지 못했다. 경남제약뿐 아니라 MP그룹(미스터피자) 화진 지와이커머스 마제스타 등이 기심위에서 ‘상장폐지 결정’이 났고, EMW는 개선기간 6개월을 부여받았다.

코스닥 실질심사가 종전 2심제(거래소→기심위)에서 올해 3심제(거래소→기심위→코스닥위원회)로 바뀌면서 기심위는 최종 결정을 코스닥위원회로 넘기고 있다. 형식은 3심제지만 구조적으로 기심위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코스닥위원회 위원 4명이 기심위 위원을 겸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법무법인 변호사는 “기심위에서 상장유지 결정이 나면 코스닥위원회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며 “하지만 2심과 3심 위원이 겹치다 보니 2심에서 끝나는 일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MP그룹은 기심위에서 상장폐지 결정이 났지만 코스닥위원회에서 개선기간 4개월이 부여됐다. 화진도 코스닥위원회에서 개선기간 1년이 부여됐다.

실짐심사 절차가 바뀐 건 금융위원회가 연초 내놓은 ‘코스닥 활성화 대책’의 일환이었다. 금융위는 코스닥위원회에 종전의 규정 제·개정, 예산 및 사업계획 승인 외에 기업공개(IPO) 및 상장폐지 심의·의결 권한까지 부여했다. 거래소 지배구조에서 코스닥시장의 독립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였다. 위원회도 9명 전원 외부 전문가로만 구성하도록 했다.
코스닥 실질심사 절차 및 시례
코스닥 실질심사 절차 및 시례
경영권 분쟁도 심사 대상

시장에서 주목하는 건 코스닥위원회의 실질심사 ‘눈높이’다. 과거 실질심사는 부실기업의 사업 지속성과 재무 현황을 들여다보고 퇴출 여부를 판단했다. 하지만 요즘엔 경영권 분쟁이나 지배구조를 퇴출 사유로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경남제약 화진 등이 경영권 분쟁으로 문제가 되는 사례들이다. MP그룹은 ‘갑질’이 논란이 된 대주주 리스크를 집중적으로 뜯어봤다. MP그룹은 코스닥위원회에서 개선기간이 부여된 직후 대주주가 경영에서 손을 떼겠다는 방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거래소 관계자는 “MP그룹이나 경남제약, 화진 등은 사업성에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투자자 보호를 위해 경영권 분쟁 등의 이슈를 해소해야 한다는 게 위원회의 판단”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선 코스닥위원회의 이 같은 행보에 기대와 우려가 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 애널리스트는 “요즘 시장 추세에 맞춰 코스닥위원회가 부실기업에 강력한 개선 방안을 요구하면서 투자자 보호 대책을 이끌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며 “코스닥시장의 독립성도 한층 강화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 권한만 남용할 소지가 있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한 변호사는 “코스닥위원회가 모든 권한을 가지면서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는 문제”라며 “수천억원 규모의 상장사 퇴출을 결정하면서 구체적인 사유나 근거 등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코스닥위원회 9명은 금융위 중소벤처기업부 변호사협회 벤처캐피탈협회 코넥스협회 등이 추천한 인물로 구성되는데 위원 명단은 공개되지 않는다. 한 코스닥 상장사 대표는 “투자자들에게 가장 큰 피해는 상장폐지”라며 “코스닥위원회가 실질심사를 빌미로 사업 실체가 있는 기업들과 과도한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진형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