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하면 바보 된다? 뇌 기능 향상에 도움"
230 vs 33. 신경과 의사이자 인지과학자인 이경민 서울대 인지과학연구소장(사진)이 ‘비디오 게임’과 ‘인지 기능’이란 키워드로 전 세계에서 발간된 2000여 건의 논문을 분류한 결과다. 게임이 사람의 인지 기능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입증한 논문은 230건에 달했다. 반면 부정적인 효과를 낸다는 논문은 33건에 불과했다. 게임이 사람들의 뇌 기능을 떨어뜨린다는 상식과 정반대다. 그나마 33건도 대부분 전체 게임 이용자 중 0.5%에 해당하는 ‘게임 중독 위험군’만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였다.

이 교수는 게임과학포럼이 17일 서울 삼성동 라마다서울호텔에서 개최한 ‘제1회 씽크 어바웃 게임톡(T·A·G talk)’ 행사를 앞두고 기자와 만나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속설은 대부분 과학적인 근거가 없다”며 “게임에 대한 오해를 조금이라도 줄이자는 취지에서 학부모 등 일반인을 초대하는 게임톡 행사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의학적으로 뇌의 건강 상태를 측정하는 지표는 두 가지다. 뇌의 미세혈관까지 원활하게 혈액을 전달할 수 있을 만큼 혈류가 원활한지, 뇌를 이루는 세포인 뉴런들이 얼마나 촘촘하게 연결돼 있는지를 따진다.

이 교수는 “게임에 집중하는 동안 뇌세포들의 연결성이 개선된 사례가 많다”며 “게임을 뇌 건강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좋은 게임’을 정의해 달라는 질문엔 “연령이나 사람마다 처방이 달라져야 한다”고 답했다. 사회성을 배워야 하는 청소년에게는 여러 접속자와 협력이 필요한 역할수행게임(RPG),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장년층에는 총싸움게임(FPS)이 적합하다는 설명이다. 뇌 혈류가 약한 노년층에는 증강현실(AR)을 기반으로 한 게임을 추천했다. 몸을 많이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혈행 개선에도 도움이 된다는 논리였다.

이 교수는 10년쯤 후면 ‘게임 치료사’란 직업이 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약사가 증상에 따라 약을 처방하듯이 개인이 처한 상황에 알맞은 게임을 추천하는 전문가 집단이 탄생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교수는 “미국은 이미 게임을 자폐증 등의 정신질환 치료수단으로 활용하고 있고 식품의약국(FDA)이 좋은 게임을 승인한다”며 “게임을 건강을 지키는 수단으로 활용할 날이 머지않았다”고 말했다.

게임에 능한 자녀들을 나무라지 말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게임을 잘한다는 것은 새로운 세계의 규칙에 빨리 적응하고 그에 맞는 전략을 세울 줄 안다는 얘기”라며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상과 상당 부분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매달 한 번씩 게임 전문가들을 초청해 모임을 열고 논의의 결과물을 일반인에게 설명하는 행사를 4~5개월에 한 번씩 열 계획이다. 시중에 나와 있는 게임들이 어떤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지 등을 담은 일반인용 가이드라인도 마련할 예정이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