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불황 여파로 중고 생활가전이 때아닌 호황을 맞고 있다. 주머니가 얇아진 소비자들이 새 제품보다 리퍼브(refurb·반품) 제품 같은 '질 좋은' 중고 가전으로 눈을 돌리고 있어서다.

17일 중고 가전업계에 따르면 올해 국내 중고 가전시장은 지난해 대비 15% 늘어난 20조원 규모로 추산된다. 판매 품목은 500여 종으로 소형 주방가전의 비중이 70%를 차지하고 있다. TV·냉장고·세탁기·에어컨 등 대형가전은 30% 정도지만 품목과 규모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국내 대표 중고거래 사이트 '중고나라'에서 판매되는 중고 가전제품도 일평균 5만개를 돌파했다. 스마트폰 등 모바일기기를 제외해도 매일 3만개 이상의 중고 가전이 거래되는 것이다.

중고 가전시장이 성장한 배경에는 경기 침체와 소비자들의 인식 변화가 있다. 중고 가전은 불경기 효과를 본다.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이 사용하던 제품들을 헐값에 내놓으면서 시장이 성장하는 것이다. 서울 동대문구 가전알뜰매장 김창수(59) 대표는 "대부분이 사무실에서 사용하던 제품들"이라며 "일반 소비자들이 쓰던 제품은 극소수"라 말했다.

기술 발전으로 제품의 내구연한이 늘어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유행에 민감한 젊은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저렴한 중고 제품을 몇년 쓰다가 새 것으로 바꾸는 소비 트렌드가 생겨나면서 이같은 경향이 뚜렷해졌다. 온라인 중고 전자기기 쇼핑몰 관계자는 "브랜드 중고 제품의 경우 대부분이 개인간 거래로 이뤄진다"며 "미개봉 신품, 리퍼브 제품이 인기를 끄는 이유도 같은 이유 때문"이라 말했다.

리퍼브 제품이 인기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고가 제품에 대한 수요와 저렴한 금액을 원하는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게 리퍼브 제품이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결혼하면서 냉장고와 에어컨을 리퍼브로 구입한 이 모씨(34)는 "질 좋은 중고를 찾다가 리퍼브 제품을 선택했다"며 "삼성 무풍에어컨과 LG 디오스 냉장고를 구입했는데 만족도가 높다. 여유가 생기면 의류관리기도 구입하고 싶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이같은 상황을 마냥 반기지는 않고 있다. 당장은 시장이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이같은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 경기 침체로 시장 전체가 어려워질 수 있어서다. 정기찬 알뜰벼룩 사장은 "중고 가전이 불경기에 호황을 누리는 업종이다 보니 경기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며 "좋아할 수도 싫어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 말했다.

윤진우 한경닷컴 기자 jiin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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