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委 "공공예술품으로 놔둘 필요성 있어"
원소유주 "나치 시절 억지로 판 것…돌려 줘야"


나치 통치 시절의 강압적 분위기에서 억지로 팔거나 빼앗겼던 미술품을 원소유주에게 돌려주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 호평을 받았던 네덜란드에서 이런 흐름에 역행하는 결정이 내려져 비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술품 소장 박물관과 원소유주 간의 분쟁을 다루는 네덜란드 반환위원회는 추상 미술의 거장으로 불리던 러시아 출신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1866~1944) 작품을 둘러싼 다툼에서 박물관 측 손을 들어줬다고 가디언이 6일 보도했다.

유대인인 에마누엘 레벤슈타인의 자손들은 칸딘스키의 1909년 수채화 작품 '페인팅 위드 하우지즈(Painting With Houses)'를 나치 치하이던 1940년 경매를 통해 억지로 팔게 됐다며 2013년 12월부터 이 그림을 소장한 암스테르담 스테델릭 박물관을 상대로 반환을 요구해 왔다.

이들은 그림을 내놓은 것은 나치가 네덜란드를 침공한 지 5개월밖에 안 된 시점이었다면서 근소한 돈(modest sum)을 받고 강제적으로 판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엄청난 '몸값' 칸딘스키 작품, 누구 품으로
레벤슈타인의 자손들이 그림을 돌려받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인 계기는 나치의 약탈 미술품을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는 운동에 네덜란드 정부가 활발하게 나섰기 때문이다.

네덜란드는 2002년 변호사와 미술사학자들이 참여하는 반환위원회를 꾸려 나치 시절 강탈당한 미술품을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전 세계에서 이런 기구를 운영하는 것은 네덜란드를 포함해 5개국뿐이라고 한다.

네덜란드는 1998년 미국 워싱턴에서 44개국이 모여 나치 강탈 미술품 60만여 점을 찾아내 돌려주기로 하는 이른바 '워싱턴 원칙'을 도출한 뒤 자국 내 미술관을 상대로 나치 시절 부당하게 입수한 미술품 소장 여부를 조사하는 등 이 원칙을 이행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위원회가 칸딘스키 작품에 대해 반환하지 않아도 된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위원회는 나치 시절인 1940년 10월 8~9일 암스테르담 프레드릭 뮬러 경매소에서 그림이 팔렸고, 레벤슈타인 가족들이 그림을 내놓지 않을 경우 어떤 운명에 처할지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면서 어느 정도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거래가 이뤄졌음을 인정했다.
엄청난 '몸값' 칸딘스키 작품, 누구 품으로
그러나 레벤슈타인 가족이 당시 재정적으로 어려웠다는 증거가 있는 점과 직계자손들이 2차 대전 후에 박물관 측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오랫동안 그림 반환을 요구하지 않은 점을 들어 박물관 측이 계속 소장해도 된다고 결정했다.

위원회는 이 그림을 공공예술품으로 놔두는 것의 장단점과 더불어 암스테르담 시민의 이익에 어느 쪽이 더 부합하는지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워싱턴 원칙' 제정 과정에 참여했던 미국 외교관인 스튜어트 아이전스탯은 "워싱턴 원칙의 퇴보"라고 지적했고, 세계유대인회를 이끄는 로널드 로더 JCS 인터내셔널 오너는 네덜란드의 도덕적 리더십이 훼손됐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한편 칸딘스키 작품은 엄청난 몸값을 자랑한다.

지난해 6월 열린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1909년 작품 '초록색 집이 있는 풍경'은 2천640만 달러(당시 환율 기준 약 301억원)에 낙찰된 데 이어 1913년 작품 '하얀 선이 있는 그림'도 같은 경매에서 4천160만 달러(약 475억원)에 팔렸다.

이를 고려하면 1909년 작품인 '페인팅 위드 하우지즈'도 수백억 원대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러시아 출신으로 말년에 프랑스 국적을 취득한 칸딘스키는 1910년 비대상회화인 '최초의 추상적 수채화'를 완성하면서 추상화를 그리기 시작한 뒤 20세기 추상 미술의 선구자로 우뚝 섰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