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의 집 앞, 차마 치매 엄마를 버리지 못하고 다시 돌아서던 ‘환’의 얼굴에 흐르는 눈물은 이 영화의 은유이자 상징이다. 영화의 후반부, 생전 처음 본 형이지만 단란해 보이는 그 가정의 행복을 지켜주기 위해 조용히 물러서는 환의 발걸음과 눈물이 처절하고도 눈부시게 장면을 수놓는다. 환의 표정과 눈빛에서 비로소 홀가분한 해방감이 묻어나는 것은 아마 피할 곳이 사라진 상태, 선택지가 사라진 인간의 얼굴에서 배어나는 그 어떤 ‘초연함’이거나 ‘고통을 초월한 감격’일지도.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그의 얼굴이 그래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슬프다. 마치 그의 삶 전체를 응시하듯.
영화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 스틸컷 / 출처. 네이버 영화
치매 엄마를 맡기기 위해 찾아온, 형의 집 앞에서 마주한 완성된 가정의 풍경 앞에 환은 직감한다. 형에게는 지켜야 할 또 다른 삶이 있다는 것을. 그 삶을 흔들지 않겠다는 결단과 희생으로 환은 고민도 없이 돌아선다. 이 찰나의 순간은 가족을 앞에 둔 인간의 본능으로 그려진다. 홀로 치매 엄마를 돌보는 거리의 이발사 환은 수시로 간질 발작을 앓아 쓰러지고 기억을 잃는 베트남 청년이다. 자신과 엄마 모두에게 최선의 선택이자 살기 위한 시도로 엄마를 한국에 있는 형에게 버리기로 결심하지만, 끝내 스스로 엄마의 영원한 보호자가 되기를 자처한다.
“우리 가족 중에 단 한 사람만이라도 행복해야 되는 거 아닐까?”
환의 이 말을 냉정하게 보자면 지금 이미 행복하지 않다는 전제에서 출발한, 자기희생의 언어다. 더 세심히 들여다보자면,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함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차분하게 허락을 구하는 말에 가깝다. 극 중 엄마는 치매로 인해 행복의 주체라기보다 돌봄이 먼저 요구되는 존재로 놓여있다. 환 자신 역시 간질과 생존의 문제로 행복을 선택할 여지가 거의 없다.
영화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 스틸컷 / 출처. 네이버 영화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아직 무너지지 않은 형의 가정일 것이다. 형의 가정을 지키는 것이 자신의 행복이 되는 순간을 마주한 환의 표정과 눈빛이 압권인 장면이다. 어쩌면 가족이란, 누군가의 행복이 가능해지기 위해 누군가의 몫이 지워지는 구조 아닐까. 동시에, 언제나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그 무엇은 아닐까.
이 영화의 결말은 이상적일 정도로 판타지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인간에게 ‘가족애’ 그 자체가 현실인 동시에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감정 아니겠는가. 환이 돌아서는 순간, 그는 모든 가능성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끝까지 지켜야 할 세계를 선택한 셈이다. 다시 살아내겠다는 태도,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단단한 형태의 사랑을 보여준 것일지도. 그에게 가족은 삶의 굴레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를 끝내 무너지지 않게 붙드는 마지막 이유일지 모른다. 그렇기에 이 감당을 자처한 환이 그의 세계에서 잘 살아내기를 관객은 같은 마음으로 응원하게 된다.
누구도 가족을 선택할 수 없다. 태어나는 순간, 우리는 이미 하나의 관계 안에 놓인다. 가족은 인간이 처음 만나는 관계다. 그래서 가족 안에서 사랑도, 미움도, 책임도 가장 날 것의 형태로 드러난다. 또 이렇게 형성된 가족 앞에 누군가는 날 때부터 차고 넘치게 가졌고, 누군가는 시작부터 생존을 걱정해야 한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누군가는 자유를 얻고 누군가는 삶 전체를 내어준다. 가장 가깝기에 가장 멀어질 수 있고, 가장 사랑하기에 가장 쉽게 미워지며, 가장 큰 행복을 주는 동시에 가장 깊은 고통을 남기기도 한다. 고된 현실과 고통스러운 갈등 앞에 놓인 환이 엄마를 버리기로 한 결심을 거두고 엄마와 함께 돌아오는 건, 그것이 자신의 존재를 지키는 길이라 여겼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에게 가족은 살아가는 힘이자 축복인 동시에 가장 어려운 시험일 수도.
영화 <엄마를 버리러 갑니다> 스틸컷 /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는 ‘가족’이라는 가장 보편적 정서와 언어로 우리에게 묻는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행복과 사랑은 과연 무엇인가. 가족을 앞에 두고 희생과 책임, 운명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가. 가족이란 그 자체로 통역이 필요 없는 언어라 밝힌 감독의 소회처럼 가족은 인류 보편적 경험이 맞다. 나라가 달라도, 문화가 달라도, 또 가족의 형태가 달라도, 가족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감정은 대개 놀라울 만큼 닮아있으니까. 굳이 번역하지 않아도 이해되는 감정의 구조 말이다.
아마도 가족은, 신이 인간에게 주신 가장 어렵고도 숭고한 사랑의 과제일 것이다. 도망칠 수 없기에, 지켜야 하는 책임을 동반하기에, 더 깊이 고민하게 되는 관계. 영화는 조용히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어떤 방식으로 사랑하고 있는가를. 그리고 당신에게 가족은 어떤 존재인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