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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벽하지 않아도 돼"…'프렌치 시크'의 미학, BB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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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te] 정연아의 프렌치 시크

    '프렌치 시크'의 아이콘 브리짓 바르도
    바르도와 생트로페

    프랑스 사람들은 세계적인 럭셔리 휴양지 생트로페를 생각하면 빨간색 의자와 테이블의 카페 세네키에 테라스에 앉아 정박된 고급 요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과 맨발에 바구니를 들고 장을 보거나 시내를 산책하던 프랑스 여배우 브리짓 바르도의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1950~60년대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아이콘 브리짓 바르도(Brigitte Bardot)의 이니셜 ‘B.B.’는 프랑스어 발음으로 ‘베베(Bébé)’, 즉 ‘Baby’를 뜻한다. 프랑스 국민에게 영원한 ‘베이비’로 기억된 바르도는 2025년 12월 28일,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브리짓 바르도. / 사진. © AFP
    브리짓 바르도. / 사진. © AFP
    그녀가 평생 머물렀던 소박한 빌라가 있는 프랑스 남부의 휴양 도시 생트로페는, 그녀의 사망 소식과 함께 마치 가족을 잃은 듯 깊은 슬픔에 잠겼다. 화려한 럭셔리 휴양지로 알려진 이곳은, 바르도에게 자연 속에서 동물들과 조용한 삶을 살아온 가장 사적이고 중요한 터전이었다.

    1958년, 바르도는 ‘라 마드라그(La Madrague)'라고 불리는 바닷가의 한 어부의 집을 구입했다. 바르도의 유명세 때문에 이 집은 곧 전 세계의 관심을 끌었고, 생트로페를 스타들의 성지로 만들었다. 그녀의 모습을 보기 위해 개인 요트와 파파라치들이 집 앞 바다에 몰려들었고, 결국 바르도는 끊임없는 시선을 피하기 위해 해변에 보호용 벽을 세우는 특별 허가를 받아야 했다. 영화계를 떠나 자유로운 삶을 찾기 위해 도착한 공간이, 아이러니하게도 또 다른 형태의 감옥이 되어버린 것이다.

    브리짓 바르도와 생트로페의 인연은 생각보다 훨씬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린 시절 파리에 살던 그녀의 부모는 생트로페에 별장을 소유하고 있었고, 바르도는 가족과 함께 이곳에서 휴가를 보내며 성장했다. 생트로페는 훗날 그녀가 선택한 은신처이기 이전에, 이미 익숙한 추억의 장소였던 셈이다.

    1956년, 그녀의 인생을 바꾼 영화 <그리고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 역시 바로 이곳에서 촬영됐다. 이 작품은 바르도를 단숨에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었고, 한적한 어촌에 불과했던 생트로페의 이름 또한 전 세계에 알려졌다.
    영화 '그리고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Et Dieu créa la femme)' 스틸 컷. (왼쪽부터) 로저 바딤(Roger Vadim), 브리짓 바르도(Brigitte Bardot), 장 루이 트랭티냥(Jean-Louis Trintignant). / 사진. © DR/RTS
    영화 '그리고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Et Dieu créa la femme)' 스틸 컷. (왼쪽부터) 로저 바딤(Roger Vadim), 브리짓 바르도(Brigitte Bardot), 장 루이 트랭티냥(Jean-Louis Trintignant). / 사진. © DR/RTS
    촬영이 없던 날이면 바르도는 한적한 팜펠론 해변에서 바다를 즐겼다. 영화 촬영팀은 해변 근처의 작은 오두막 식당에 모여 점심을 먹기 시작했고 콜몽 가족이 운영하던 소박한 식당은 하루 80명분의 식사를 준비해야만 했다. 고기는 동네 빵집의 오븐에서 굽고, 물은 광장의 분수에서 길어 왔다. 이 식당이 훗날 생트로페 해변에서 가장 유명하고 힙한 레스토랑 중 하나인 ‘클럽 55’의 시작이었다.

    영화 속 자유, 현실 속 감금

    사슴을 닮은 눈매, 금빛의 풍성한 머릿결, 비시 체크 패턴, 그리고 생트로페의 해변, 바르도는 하나의 스타일 아이콘에 그치지 않는다. 그녀는 1960~70년대 여성성의 이상이자 욕망의 이미지였다.

    바르도를 단숨에 세계적인 스타로 만든 영화 <그리고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 속에서 그녀는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여성상이었다. 남성의 욕망을 위해 존재하는 여성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숨기지 않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대중과 언론은 배우 바르도의 연기보다, 그녀의 연애와 사생활, 스캔들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자유를 상징했던 여성은 정작 자신의 삶에서는 가장 많은 감시와 주목을 받는 존재가 되었다.

    1960년, 앙리 조르주 클루조 감독의 영화 <진실>은 바르도를 단순한 관능의 아이콘에서 벗어나, 연기력을 입증한 배우로 다시 보이게 만든 결정적인 작품이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동시에 그녀를 심리적으로 극한까지 몰아붙였고, 결국 바르도는 자살을 시도하기에 이른다. 완벽을 요구한 감독의 연출 아래에서, 연기력을 갖춘 여배우라는 평가를 얻기 위해 그녀는 자신의 몸과 마음으로 그 대가를 치러야 했던 셈이다.
    앙리 조르주 클루조 영화 '진실' 스틸 컷. / 사진. © IMDb
    앙리 조르주 클루조 영화 '진실' 스틸 컷. / 사진. © IMDb
    1973년, 바르도는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시기에 39세의 나이로 영화계를 떠났다. 이는 단순한 은퇴라기보다, 더 이상 사람들의 시선 속 아이콘으로만 남지 않겠다는 선택에 가까웠다. 화려한 조명에서 한발 물러나 영화계를 완전히 떠나겠다는 그녀의 결정은, 바르도가 스스로에게 허락한 가장 큰 자유였다.

    자유와 편안함이 만든 프렌치 패션 스타일

    1950~60년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이었던 바르도의 스타일은 자유롭고 관능적이며 동시에 현대적인 ‘프렌치 스타일’로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져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패션 아이콘’으로 불리는 그녀는 트렌드를 기획한 인물도, 의도적으로 스타일을 연출한 셀러브리티도 아니었다. 바르도의 옷차림은 언제나 일상에서 나왔다. 발레리나 시절부터 즐겨 신던 플랫 슈즈, 스트라이프 티셔츠, 몸에 딱 붙는 카프리 팬츠, 헝클어진 듯 단정한 머리, 특히 오프숄더 톱으로 상징되는 ‘바르도 네크라인’은 섹시함의 연출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편안한 그녀의 일상복으로, 단지 자신의 감각에 충실한 선택이었다.
    브리짓 바르도. / 사진. © IMDb
    브리짓 바르도. / 사진. © IMDb
    패션 잡지와 브랜드들은 바르도의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다루었고, 그녀의 ‘자연스러운 섹시함’을 하나의 공식처럼 받아들였다. 개인의 자유로운 태도에서 비롯된 스타일이었지만, 그것은 곧 유행이 되었다. 영화 속에서 겪었던 이미지의 굴레는 그렇게 패션의 영역에서도 형태만 바꾼 채 이어졌다.

    과도한 메이크업보다 맨 얼굴에 가까운 피부, 화려한 스타일링보다 편안하고 심플한 패션, 바르도의 패션 감각은 콘셉트도, 연출도, 전략도 아니었다. 오히려 관리되지 않은 상태에 더 가까웠다.

    그녀가 남긴 것은 특정 아이템이 아니라,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태도, 즉 외적으로 드러나는 스타일 이전의 내적 자세인 애티튜드였다. 이는 이후 ‘프렌치 시크’라 불리는 미학의 중요한 토대가 된다.

    스크린을 떠나 선택한 새로운 삶

    바르도의 삶에서 가장 급진적인 전환은 영화도, 패션도 아닌 동물 보호 활동이었다. 1973년 이후 바르도는 말하지 못하는 동물의 편에 섰다. 1986년 설립한 브리짓 바르도 재단은 모피 산업, 공장식 축산, 동물 학대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이는 이미지 관리나 취미 활동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꾼 선택이었다.

    그녀의 발언은 직설적이었고, 물러섬이 없었다. 그로 인해 법적 처벌을 받거나 거센 비판에 휘말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 시기의 바르도에게 더 이상 ‘사랑받는 이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대표적인 섹스 심벌이었던 그녀는, 이제 가장 보이지 않는 존재들의 목소리를 대신하는 인물이 되었다.

    바르도에게 동물 보호는 선행을 넘어, 인간만을 중심에 두는 사회에 대한 거부였다. 말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이용당하는 존재들을 지키려는 마음은, 한때 이미지에 갇혀 살았던 자신의 경험과도 닮아 있었다.
    캐나다에서 이루어지던 아기 물개 사냥의 잔인함을 보고 바르도는 동물 보호운동가가 된다. / 사진 출처. 브리지트 바르도 동물 보호 재단 사이트/필자 제공
    캐나다에서 이루어지던 아기 물개 사냥의 잔인함을 보고 바르도는 동물 보호운동가가 된다. / 사진 출처. 브리지트 바르도 동물 보호 재단 사이트/필자 제공
    바르도가 생전에 꿈꾸었던 대로, 라 마드라그는 곧 박물관으로 새 얼굴을 갖게 된다. 박물관의 입장료 수익은 동물 보호를 위해 브리짓 바르도 재단에 기부될 예정이다. 오랫동안 빌라의 정문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 채 상상만 해야 했던 팬들과 여행자들은 머지않아 그 안으로 들어가 바르도의 시간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파리=정연아 패션&라이프스타일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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