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7월 20일, 당시 한국출판금고(현 한국출판문화진흥재단)에서 서평 격주간지 《출판저널》을 창간한다. 이후 척박하기 그지없었던 국내 서평지의 위상을 굳게 다지며 발행을 거듭하던 《출판저널》은 2002년 6월 통권 326호를 발간한 후 휴간에 들어갔다가 7개월 만인 2003년 2월에 발행처를 대한출판문화협회로 바꾸어 복간되면서 격주간에서 월간으로 발행주기가 바뀌게 된다. 아울러 2007년 5월호(통권 378호)부터는 판형 또한 기존의 타블로이드판에서 가로 220mm, 세로 275mm의 새로운 판형으로 변신하게 된다. 하지만 2008년 9월, 《출판저널》은 통권 394호를 발행하고 나서 또 한 번 기약 없는 휴간에 들어감으로써 열혈독자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월간지, 주간지, 일간지를 막론하고 “책에 대해 평가하는 형식”의 서평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에 들어와서의 현상이다. 곧 대중매체에 의한 국내 서평의 역사는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후 주요 일간지에서는 주말 북섹션을 발행하고, 서평지를 표방하는 전문잡지가 여러 종 발행되었는가 하면, 각종 학술지나 계간지에서도 서평 항목을 따로 마련함으로써 다양한 서평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선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처럼 서평 공간은 확대일로에 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서평을 만나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는 점에서, 나아가 이른바 ‘주례사 비평’에 불과한. 심지어 ‘보도자료’에 불과한 서평이 난무하는 세태에 대한 비판을 면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출판저널》이 지난 세월 수행했던 고유기능으로서의 ‘서평’의 양과 질은 어떠한가? 월간 형식에서 휴간에 들어가기 직전인 2008년 8월호(통권 393호)를 뒤져보니 서평 형식으로 소개된 책이 줄잡아 40여 종, 단순 리뷰 형식으로 소개된 책은 전자책을 포함하여 150종이 넘었다. 격주간으로 발행되었던 타블로이드판 시절에도 양적인 측면에서는 더 많았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았다는 기억에 의지해 보건대, 이전 한 달 동안 발행된 신간 중에서 웬만한 것은 모두 《출판저널》의 그물망을 통해 걸러진다는 뜻이니, 그 양으로만 보면 여기에 소개 글이 실리지 못한 책은 면목 없는 책, 별 볼 일없는 책으로 낙인찍혔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출판저널》에 실리는 서평은 크게 외부 필자의 그것과 소속 기자의 그것으로 나뉜다. 외부 필자는 주로 해당 분야 전문가들로서 출판평론가 또는 전공 교수들이며, 대중성이 짙은 것보다는 학문적으로 검증된 전문서를 중심으로 서평이 전개된다. 《출판저널》을 중심으로 심층 분석한 연구자료나 보도기사를 찾다 보니, 지난 2008년 1월 “한국 서평의 현주소”라는 제목의 기획특집 기사를 실었던 《교수신문》에서 《출판저널》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언급이 있었다.
한국에는 학술전문 서평 전문지가 없다고 보면 된다. ‘한국에서 서평이 잘 이뤄지고 있는 매체를 자유롭게 꼽아달라’는 질문에 서평 관련 전문가들은 교수신문을 포함한 각종 신문과 계간지들을 열거했다. 추천을 해준 매체들은 다들 서평을 다루고 있지만 중심으로 내세우지는 못하고 있다. 신문들도 학술서를 전문적으로 다루거나, 서평을 전면에 내세우는 경우는 드물다. 신문의 책 관련 섹션도 서평 전문이라기보다 신간소개 수준이 주를 이루고 있다.
《출판저널》은 1987년 창간해 매월 5일과 20일, 격주간으로 발행하다 지금은 월간으로 발행되고 있다. 서평전문가들이 《출판저널》을 많이 추천한 것은 학술서를 다루는 서평이 많기 때문으로 보인다. 필자들도 서평하는 책의 학문분야 전공교수들이 쓰고 있다. 학술서 한 권에 대한 서평은 원고지 8~10매 내외다.
이 같은 기사에 기대지 않더라도 그동안 《출판저널》을 거쳐 간 기자와 논객들, 좋은 책 만들기에 여념이 없는 출판사 편집자들, 그리고 매호마다 한 자라도 놓칠까 싶어 충실한 읽기에 몰두하며 거침없는 피드백을 보내곤 했던 독자 군단을 생각하면 서평지로서 기능해 온 《출판저널》의 공로가 제법 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출판저널》이 지향해 온 서평의 빛깔은 어떤 것일까?
서평의 질적 수준에 관한 단상, 그리고 《출판저널》
우리 독자들에게 익숙한 출판평론가 중 한 사람인 ‘표정훈’은 그의 저서 『탐서주의자의 책』에서 서평이란 “책 내용의 옳고 그름, 좋고 나쁨, 잘되고 못됨 등을 들어 평가하는 글이나 말로서, 필자나 발언자 이외의 1인 이상의 수용자가 있어야 하고, 다수의 공중이 접근할 수 있는 매체나 제도를 전제로 한다”고 정의한다. 이런 견해와는 다른 입장인 듯 일본의 대표적인 지식인 ‘다치바나 다카시’는 서평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책에 대한 평가는 읽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로 나타나는 것이 당연하다. 책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개인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므로 당연히 읽는 사람 스스로에게 맡기는 것이 가장 나은 방법이다. 서평을 하는 사람은 책을 읽는 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의 참고의견을 제시하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얼핏 두 가지 견해를 대조하면 특정도서에 대한 주관적이면서도 적극적인 평가와 의견 개진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과 독자들의 선입견을 자극하거나 독서에 간섭할 정도로 깊이 있는 평가를 내려서는 안 된다는 입장으로 맞서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서평은 기본적으로 “비평인 동시에 책에 대한 소개”라는 관점으로 두 가지 견해를 다시 들여다보면 일맥상통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비평으로만 일관하거나 줄거리 등 책에 대한 소개로만 이루어진 것은 진정한 의미의 서평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곧 비평과 소개가 적절히 어우러진 글쓰기야말로 서평의 경지에 한 걸음 다가가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사실 몇 명 안 되는 기자가 정기적으로 일정 분량의 서평 전문지를 펴낸다는 것은 업무량만 보더라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기자 한 사람이 써내야 하는 서평 기사의 분량뿐만 아니라 대상 도서를 선택하고 분류하는 한편, 알맞은 외부 필자를 섭외하고 원고가 마감될 때까지 노심초사해야 하는 과정의 무한 반복은 얼마나 고단한 과정일는지 짐작하고도 남는 일이다. 그렇게 쏟아낸 기사들이 오죽할까 싶은 염려가 스치는 것도 사실이다. 앞서 인용한 《교수신문》의 특집기사에서 기자는 “어떤 한 책에 대한 일간지의 리뷰를 모두 모아 하나로 연결시키면 출판사에서 작성한 책소개 보도자료가 된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엉터리 서평이 많다. 전문지들의 서평 또한 인구에 회자하는 명문(名文)이 없는 걸 보면 본격성과 전문성이 아직 많이 모자란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일면 타당한 말일 수도 있다.
매주 32면 섹션으로 발행되는 《뉴욕타임스》의 ‘뉴욕타임스 북리뷰’를 살펴보면 우리 서평 매체의 열악한 현실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뉴욕타임스 북리뷰’는 한 호에 픽션 6종, 시집 및 논픽션 11종 내외의 서평을 게재한다. ‘뉴욕타임스 북리뷰’를 만드는 《뉴욕타임스》 리뷰팀은 상당수의 기자와 편집자로 운영되고 있으며, 리뷰 기사 하나를 출고하는 데 약 두 달을 할애한다고 한다. 서평 대상 도서를 선정하는 기준은 분야마다 다른데, 픽션의 경우에는 글쓰기의 질, 논픽션은 새로운 주제나 가치와 함께 저자의 새로운 시각 등이 중심이 된다. 또 각 서평은 전문가에 의뢰하는데, 리뷰팀은 서평자가 저자, 출판사, 에이전트와 특별한 관계에 있는지 반드시 점검한다고 한다. 서평자의 원고가 도착하면 편집진이 재검토 과정에서 “공정한가? 전문적인가? 수준이 높은가?” 등을 따져본다. 일간지인 만큼, 독자들이 책을 사서 읽게 만들거나 대화의 소재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에 서평의 목적을 둔다고 한다.
이처럼 ‘뉴욕타임스 북리뷰’까지 비교 대상으로 삼는다면 《출판저널》은 그야말로 보잘것없는 잡지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출판저널》을 정기구독해 본 경험이 있는 독자라면, 그리하여 《출판저널》에서 소개받은 책을 구해 읽은 경험이 있는 독자라면, 나아가 다음 호를 기다리며 설레는 기분으로 서점을 돌아다녀 본 경험이 있는 독자라면 《뉴욕타임스》 독자 못지않은 느낌으로 《출판저널》을 기억할 것이다. 게다가 강철주, 이권우, 김중식, 허연, 이성수, 최성일, 박천홍, 마정미…… 등등 지면을 빛냈던 기자들의 쟁쟁한 이름 또한 아름답게 기억될 것이기에 《출판저널》은 곧 우리에게 대표적인 서평 전문지로 각인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출판저널》 창간호의 이모저모
1987년 7월 20일 격주간으로 창간호를 낸 《출판저널》은 가로 256mm, 세로 316mm 크기의 이른바 타블로이드 판형에 중철 제본 형식을 띠고 있다. 표지는 원색 4도, 본문은 별색 2도로 인쇄되었다. 표지를 보면 책 속에서 꽃이 피어나는 모습을 형상화한 일러스트를 가운데에 두고 제호와 발행일 및 가격이 위에 있고, 그 아래에 주요 기사의 제목이 포진해 있다. 표2에는 ㈜교학사, 표3에는 ㈜지학사, 표4에는 주식회사 계몽사의 광고가 실렸다. (하단 사진 참조)
<출판저널>. / 필자 제공
본문은 모두 48쪽으로 구성되었는데, 표지를 넘기면 왼편에 창간사, 오른편에 차례가 나온다. 차례 아랫부분에 표기된 걸로 보아 표지일러스트레이션은 ‘윤희중’이 맡았다. “도서문화의 확장과 충실화를 위한 공론”이라는 제목의 창간사는 발행인 정진숙(鄭鎭肅, 1912~2008) 선생이 썼다. 이로써 당시 을유문화사 대표이기도 했던 정진숙 선생이 《출판저널》 발행처인 (재)한국출판금고의 이사장이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이 잡지의 편집방침을 밝히고 있는바,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출판저널>의 편집방침. / 필자 제공
첫째, 소개할 가치가 있는 책들은 어떤 형태로든 빠짐없이 소개하여, 하루에도 백종 이상 쏟아져 나오는 새 책의 가장 철저하고 신속한 정보지로서의 기능을 다할 것이다.
둘째, 중요한 책과 더 중요한 책들을 책임질 수 있는 눈으로 잘 가려, 짧고 길게 또는 이야깃거리나 전문적인 비평 등으로 다양하게 평가하고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권위 있고 본격적인 서평지의 역할을 다할 것이다.
셋째, 글을 쓰는 이, 책을 펴내는 이, 특히 읽은 이들 간의 연결회로를 최대한으로 활력화함으로써 학계 동정(動靜)으로부터 독자 교육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도서문화의 확장과 충실화에 기여하는 교양지로서의 몫을 다할 것이다.
넷째, 책을 만들고 유통시키고 이용토록 하기까지의 합리적 경영방법이나 새 기술의 활용방법을 소개하고 권장하는 안내서로서의 작업에도 노력할 것이다.
이 같은 방침을 실현하기 위해 “한국출판금고로부터 발간비를 전적으로 지원받음으로써 시장성에 매인 얄팍한 편집태도와 기사작성을 원천적으로 피하면서 의연하면서도 독자적인 공론성(公論性)을 유지토록 한 것” 그리고 “각계의 신뢰할 수 있는 분들을 편집서평위원으로 위촉하여 편집서평위원회를 구성함으로써, 새로 출간되는 책들을 그때그때 자리매김하고 그에 대한 해석을 엄정하고 객관적으로 처리하도록” 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출판저널》을 만드는 데 참여하고 있는 걸까 궁금했다. 그래서 간기면을 찾아보니 본문 맨 마지막 단에서 그 내용을 살필 수 있었다. 이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진용을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편집서평위원 50인의 명단이 한자(漢字) 이름 표기로 기재되어 있다. 강현두, 권영민, 김병익, 김우창, 김치수, 변형윤, 신용하, 유재천, 이강수, 이강숙, 이원복, 장회익, 정원식, 정진홍, 정병규, 차하순, 한상진, 한승헌 등 당대의 논객과 문사들이 망라되어 있다.
본문 편집디자인을 보면 가로 4단을 기본으로 하여 기사가 배열되어 있고, 하단에는 광고를 배치하고 있어 대체적으로 깔끔한 느낌을 준다. 당대 최고의 편집디자이너로 정평이 나 있던 정병규 선생이 아트디렉터를 맡았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고나 할까.
본문 첫 기사로는 6쪽에 걸쳐 좌담회를 지상(紙上) 중계하고 있다. “한국출판, 넓어지고 깊어졌다_물량폭주·목록확장·출판 하드웨어의 발전, 출판의 제3시대를 말한다”라는 헤드라인 아래 장하린 종로서적 대표, 김형윤 김형윤편집회사 대표, 임인규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 이중한 출판평론가, 이규용 중앙전자 대표가 참석했으며, 차미례 편집주간이 사회를 맡고 있다(<사진 1> 참조). 좌담회 기사에 이어 ‘독서의 현장—책이 독자를 찾아간다’는 코너명과 함께 “경기도 주부 3천3백명을 찾아가는 수원 이동도서관”이라는 제목의 취재기사(이효숙 기자)가 2쪽에 걸쳐 실려 있다(<사진 2> 참조).
[위에서부터] <사진 1>과 <사진 2>. / 필자 제공
그 뒤를 이어 2쪽에 걸쳐 ‘지금 독서중’, ‘지금 집필중’, ‘지금 편집중’이라는 코너명 아래 독자(전 서울대 총장 이현재 교수·방송스크립터 장상욱 씨)와 저자(전 중앙기상대 예보국장 김광식 씨와 『기상학사전』), 그리고 편집자(기전연구사의 『전기기술 시리즈』)를 만나 인터뷰한 기사(정은교·오애리 기자)가 실려 있다(<사진 3> 참조).
이어지는 기사는 ‘취재서평’(엄창호 기자)으로 서문당에서 발행한 『사진으로 보는 조선시대』·『사진으로 보는 근대한국(상·하)』·『사진으로 보는 독립운동(상·하) 등 6종, 그리고 지학사에서 발행한 『오늘의 세계문학』 전 23권을 각각 1쪽씩 할애하여 소개하고 있다(<사진 4> 참조).
[위에서부터] <사진 3>과 <사진 4>. / 필자 제공
그다음으로는 ‘인터뷰’(오애리 기자) 코너가 이어지는데, 여기서는 1쪽에 걸쳐 “잊혀진 궁중의 삶 기록한 김용숙 교수”라는 제목 아래 『조선조궁중풍속연구』(일지사)를 펴낸 저자의 인터뷰 기사를 담고 있다. 그 뒤를 잇는 것은 기사가 아니라 전면광고. 앞의 기사들 하단에는 현암사, 견지사, 문예출판사 등의 광고와 하서출판사의 1단 광고가 실려 있었는데, 이번에는 본문 1쪽 전면에 걸쳐 범우사의 ‘범우문고’ 광고가 나온다(<사진 5> 참조).
<사진 5>. / 필자 제공
본문 16쪽부터 20쪽까지는 1쪽당 2종에 대한 전문가 서평이 실려 있다. 모두 10종에 대한 서평인데 그 면면을 살펴보면 번역서 『의료시설의 환경계획』(김광문 서평), 『기르는 새들』(김호근 서평), 『한국철학사(상·중·하)』(이명현 서평), 『러시아 전래민화』(조흥윤 서평), 『화두, 기록, 화석』(김치수 서평), 『개화기연극사회사』(서연호 서평), 『철학동화 노마네반 아이들』(장명수 서평), 『예술과 인간가치』(김문환 서평), 『한국전쟁과 1950년대의 자본축적』(변형윤 서평), 역해서 『자치통감(천·지·인)』(권중위 서평) 등이다. 이로써 이 잡지가 다루게 될 서평의 기준과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쪽마다 하단에는 청림출판, 한길사 등의 광고가 실려 있다(<사진 6> 참조).
21쪽에는 ‘저작권 통신’이란 코너명으로 한승헌 변호사의 “번역서 중의 사진·그림·도표와 저작권”이란 글이 실려 있다. 당시 저작권 관련 정책이나 법규가 과도기에 있었던 만큼 요즈음에는 통하지 않을 만한 내용도 담겨 있다. 특히, “번역출판이 자유라면 같은 책 속의 사진이나 그림도 복사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수가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라는 리드 문구가 눈에 띈다. 당시에는 외국 저작물을 제대로 보호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문제가 없을지 모르지만, 이젠 일일이 따져보아야 할 일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오른편에 한 단에 걸쳐 ‘독서퍼즐’이 있는데, 그 내용은 ‘숨은 이름 찾기’와 ‘글자집기’로 이루어져 있다(<사진 7> 참조).
[위에서부터] <사진 6>, <사진 7>. / 필자 제공
22쪽과 23쪽에는 ‘북다이제스트’ 코너명으로 “경제학을 위한 소설인가 소설을 위한 경제학인가”라는 제목 아래 매일경제신문사에서 펴낸 『경제학살인사건』(마셜 제번스)에 대한 경제평론가 정운영의 해설이 실려 있다. 그리고 향문사의 광고도 보인다. 그 뒤를 이어 두 쪽에 걸쳐 “「국어」 지킨 한 세기, 노학자 일석(一石)의 서재”라는 제목 아래 차미례 주간이 국어학자 이희승 선생의 서재를 찾아 인터뷰한 내용이 실려 있다. 사진은 주명덕 기자가 찍었다(<사진 8>, <사진 9> 참조).
[위에서부터] <사진 8>, <사진 9>. / 필자 제공
26쪽부터는 ‘잡지계소식’, ‘무크소식’, ‘세계의 출판’ 등이 이어진다. 발행잡지가 2천 종을 넘어섰다는 내용과 함께 무크지의 창간도 이어지고 있다는 내용, 그리고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솔벨로의 신작 『마음의 상처로 더 많이 죽는다』를 비롯해서 당시 미국 베스트셀러였던 『미저리』 등을 소개하고 있다. 29쪽 하단에는 《뉴욕타임즈 북리뷰》 베스트셀러 목록(1987년 6월 14일 현재)을 싣고 있다. 30쪽과 31쪽에는 ‘어린이책 들춰보기’ 코너로 14종의 어린이책이 소개되어 있다. 박영사와 예림당의 광고도 실렸다(<사진 10>, <사진 11>, <사진 12> 참조).
[위에서부터] <사진 10>, <사진 11>, <사진 12>. / 필자 제공
이어서 ‘읽기자료가 나온 모임들’, ‘정기간행물 출판기사 색인’이 32쪽에 실려 있고, 33쪽부터 40쪽까지는 ‘신간안내’로 『현대경제사상의 재조명』(윤석범 편) 등 31종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책표지 이미지와 함께 실려 있다. 이 지면에는 비봉출판사, 지문사, 까치, 기문당, 평화출판사, 지식산업사, 일조각, 다산출판사 등의 광고가 밑을 받치고 있다. 이어서 ㈜시사영어사의 전면광고가 등장하고, 42쪽에는 ‘우리책방 단골손님’이란 코너가 나온다. 여기에는 다섯 곳의 지역서점에서 단골손님의 직업과 나이, 주소 등을 공개하고 있는데, 요즈음에는 개인정보보호법 때문에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당시만 해도 개인의 주소와 전화번호가 버젓이 활자화되고 있었다는 것이 이채롭다. 그리고 그 옆으로는 ‘출판계 움직임’이 실렸는데, 대한인쇄문화협회 회관 신축기공식 소식과 제10회 한국출판학회상 시상식 소식이 눈에 띈다(<사진 13>, <사진 14> 참조).
[위에서부터] <사진 13>, <사진 14>. / 필자 제공
43쪽부터 48쪽 간기면 직전까지는 분야별 ‘신간목록’이 게재되어 있다. 각 쪽마다 하단에는 동화출판공사, 지경사, 나남출판사, 양영각, 청하의 광고가 실려 있고, 마지막 쪽 하단에는 문학과지성사, 평단문화사, 중앙출판공사의 1단 광고가 실렸다. 그리고 간기면 아래에는 ‘출판저널 정기구독 안내’와 ‘독자서평을 모집합니다’라는 알림이 게재되어 있다. 요즈음에는 볼 수 없는 것이라서 그런지 잡지 본문 사이에 끼워져 있던 지로용지도 정겹다. 당시 《출판저널》 한 부의 가격이 500원이었으니 한 달 치는 1,000원, 1년이면 12,000원 정도였던 것으로 보인다(<사진 15>, <사진 16>, <사진 17> 참조).
[위에서부터] <사진 15>, <사진 16>, <사진 17>. / 필자 제공좋은 책이 키운 《출판저널》 혹은 《출판저널》이 키운 책
베스트셀러가 곧 ‘좋은 책’이라고 할 수 없는 것처럼 대중매체가 소개하는 책이 모두 의미 있는 책일 수는 없다. 그렇다고 나쁜 책을 골라 억지로 포장해 주는 서평을 싣는 매체가 있다면 그것 또한 지탄받아 마땅하다. 몇 년 전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나의 졸저가 《출판저널》의 “이 책 그 사람”인가 하는 코너에 저자 인터뷰 형식으로 소개되었을 때의 감동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이제 막 취재기자로 입문한 앳된 모습의 홍이현 기자와 노련하게 카메라 렌즈 속으로 나를 들여다보던 박신우 기자를 또렷이 기억한다. 물론 그보다 훨씬 이전에도 졸저와 함께 나의 프로필이 소개된 적이 있었지만, 그때의 감흥을 고스란히 옮겨놓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기에 새로운 기억으로 그 설렘을 대신하는 것일 뿐이다.
그 밖에 이러저러한 이유로 원고청탁이 올 때면 흔쾌히 응하면서도 《출판저널》의 위상에 어울리는 글쓰기 때문에 고심했던 추억들이 내 기억 속에서 아름답게 나부끼고 있다. 특히 《출판저널》 통권 202호(1996.11.5.)에 실었던 “미화된 인생고백, 과연 진실한가?”라는 제목의 글이 잊히지 않는다. 유명인들이 써내는 ‘자전적 에세이’ 혹은 ‘자전고백 소설’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나열하며, “대중의 추앙을 받는 스타답게 자신들의 삶이 의미 있고 교훈적이라면, 그리하여 혼자 간직하기엔 너무 아까운 내용을 담고 있다면 기왕에 일말의 거짓도 없는, 그야말로 진실에 입각하여 스스로 쓰고 다듬어 개정판을 낼 용의는 없는지 묻고 싶다”고 직격탄을 날렸던 일은, 그리하여 주요 일간지에서도 졸고를 인용하며 문제점을 부각시켰던 일은 지금 생각해도 통쾌한 기억이다.
이처럼 좋은 서평은 '객관성'보다는 '주관성'을 잘 활용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대상으로서의 책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는 전제가 지켜져야 한다. 곧 좋은 서평을 위해서는 “정확하게 읽기, 텍스트와 거리를 유지하며 비판적으로 읽기, 서평을 위한 주관적 도구(감상, 경험, 평가)를 잘 활용하며 쓰기”가 골고루 반영되어야 한다.
이제 서평을 다루는 매체는 그 폭이 매우 넓어지고 있다. 신문이나 잡지 같은 인쇄매체를 벗어나 공중파 및 케이블 TV 시대를 지나, 유튜브 등 영상 채널과 각종 SNS, 그리고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서점의 ‘리뷰’ 코너에서도 활발하게 그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이렇듯 빠르게 진화하는 서평 매체에 비추어 《출판저널》은 과연 어떤 진화의 몸부림을 시도했고, 또 앞으로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한국출판금고와 대한출판문화협회 시대를 거쳐 책문화네트워크(주)로 발행주체가 바뀐, 그리고 격주간, 월간을 지나 이제 판형을 대폭 줄여서 격월간 체재로 발행되고 있는 시점에서 《출판저널》은 어떻게 그 위상을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까?
여기서 《출판저널》뿐만 아니라 올바른 서평 전문지들이 우리 책 세상에 남아 올바른 서평이 자라는 밭이 되고 논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새삼스레 거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무언가 이들의 앞날을 다독이는 말이 필요하다면, 나에게 이른바 ‘출판평론가’라는 타이틀을 달게 해준 평론 「베스트셀러, 향기의 이름 혹은 악취의 이름」(1995) 말미에서 했던 말로 대신하고자 한다.
출판은 분명 인류사의 발전에 있어서 커다란 축을 담당한 분야이며, 앞으로도 그 역할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다만 새로운 분야의 등장에 따라 잠시 소외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당장의 황홀한 향기를 뿜다가 순식간에 악취를 뿌리는 베스트셀러에 집착하기보다는 오래도록 변함없이 은은한 향기를 선사하는 책을 만들기 위하여 애써야 마땅하다. 지금은 비록 어렵지만 언젠가 또다시 출판의 기능이 새롭고도 절실하게 요구될 날이 올 것이라는 확신 속에서 출판계 종사자들은 거듭나는 자세로 끝없는 노력을 기울여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