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 아이파크몰 개장 전, '치이카와샵' 현장 대기등록을 위해 소비자들이 새벽에 오픈런 줄을 서고 있다. /사진=아이파크몰 제공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 개장 전, '치이카와샵' 현장 대기등록을 위해 소비자들이 새벽에 오픈런 줄을 서고 있다. /사진=아이파크몰 제공
14일 수요일 오전 9시, 쇼핑몰 개장 시간이 1시간 반이나 남았지만 '3시간 웨이팅'이 확정됐다.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에 있는 일본 캐릭터 지식재산권(IP) '치이카와' 굿즈 매장의 대기 등록 현황이다. 웨이팅 등록 태블릿에는 '현재 대기 297팀, 예상 대기시간 174분'이라는 안내가 떠 있었다.

일본 캐릭터 치이카와가 국내에서 '연쇄 품절'을 일으키고 있다. 영화관부터 생활용품점, 소규모 애니 굿즈샵 등 판매처를 가리지 않고 매대 위 품절 표시가 끊이지 않는다. 귀여운 외형에 주택청약 등 현실의 고단함을 녹인 세계관이 국내 2030 팬덤을 사로잡은 데다, 최근 극장판 영화 개봉까지 맞물리면서다. 연속된 품절로 굿즈를 구하기가 어려워지자 중고거래 플랫폼에 첫발을 들이는 소비자도 늘었다.
14일 수요일 오전 9시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 '치이카와샵' 현장 웨이팅 등록 태블릿에 '현재 대기 297팀, 예상 대기시간 174분'이라는 안내가 떠있다./사진=박수빈 기자
14일 수요일 오전 9시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 '치이카와샵' 현장 웨이팅 등록 태블릿에 '현재 대기 297팀, 예상 대기시간 174분'이라는 안내가 떠있다./사진=박수빈 기자

밤 10시부터 '오픈런'…영화관 특전도 당일 품절

용산 아이파크몰 '치이카와샵' 오픈런은 전날 밤 10시부터 시작된다. 도파민스테이션이 마감한 시각부터 대기 줄이 형성되기 시작해 새벽 무렵에는 최대 500여 명까지 몰리는 식이다. 점심시간에는 현장 웨이팅 등록이 마감돼, 오후 1시 이후에 도착하면 치이카와샵에는 들어갈 수도 없다. 아이파크몰에 따르면 상품 구매 고객 기준 최근 2주간 하루 평균 1050여명이 치이카와샵을 방문했다.

영화관도 마찬가지다.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영화관마다 구할 수 있는 선착순 한정 굿즈나 팝콘통 등 콜라보 상품을 구하기 위해 오픈런 행렬이 이어진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오전 8시20분경 팝콘통을 구매하기 위해 대기줄을 서 있는 인증 게시물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이날부터 제공되는 '비밀책' 특전은 CGV 용산아이파크몰, 여의도, 영등포타임스퀘어, 구로점 등에서 오후 2시께 동나기도 했다. 하루도 안 돼 특전 굿즈가 매진되는 것이다.
지난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CGV 연남점에서 치이카와 관련 상품이 매진됐다. /사진=박수빈 기자
지난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CGV 연남점에서 치이카와 관련 상품이 매진됐다. /사진=박수빈 기자
팬들에게는 영화 관람과 굿즈샵 방문이 하나의 코스가 됐다. 굿즈를 구하기 위한 코스로 팬들은 이를 치이카와 세계관에서 미션 수행을 뜻하는 '토벌'이라 부른다. 이날 쌍둥이 여동생과 함께 용산 치이카와샵을 찾은 20대 여성 A씨는 "용산에 상설매장이 생긴 후로는 5번 넘게는 왔다"며 "영화도 2번이나 봤다. 귀여운 매력에 빠져서 1~2년 전부터 좋아하고 있다"고 했다. A씨 자매는 치이카와 티셔츠를 입고, 가방에 인형 키링을 매달아 팬심을 드러냈다.

영화관과 상설매장에서 굿즈를 구하지 못한 팬들은 생활용품점과 소규모 애니 굿즈샵으로 향했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품절을 피하기는 어려웠다. 지난 12일 오후 6시 서울 홍대 마포구 미니소에서는 치이카와 상품이 주말부터 대부분 소진되면서 매장의 3/1을 차지하던 치이카와 매다가 한 칸으로 줄어 있었다. 홍대 일대 애니 굿즈샵에서도 품절 표시를 흔히 볼 수 있었다. 한 매장 점주는 "영화 개봉이 알려진 시점과 맞물려서 팬들이 많이 찾아왔다"며 "1인 1개로 구매 한정을 뒀는데도 빨리 팔렸다"고 말했다.

품절에 중고거래로 '우르르'…검색량 14배·거래 9.6배↑

지난 12일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일대 애니메이션 굿즈샵에서 판매하는 치이카와 상품이 거의 대부분 품절됐다. /사진=박수빈 기자
지난 12일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일대 애니메이션 굿즈샵에서 판매하는 치이카와 상품이 거의 대부분 품절됐다. /사진=박수빈 기자
오프라인 매장에서 원하는 굿즈를 구하지 못한 소비자들의 움직임은 중고거래 시장에서도 나타났다. 번개장터에 따르면 10월 첫째 주 치이카와 검색량은 7월 첫째 주보다 약 14배 늘었다. 같은 기간 안전결제 거래 건수는 9.6배 증가했다. 영화 개봉 직전 주와 비교해도 거래 건수는 3.6배 늘었다. 치이카와의 대한 관심이 실제 상품 구매로 이어지면서 중고 거래 시장까지 달아오른 것이다.

치이카와 상품을 구매한 건 대부분 2030 여성이었다. 10월 첫째 주 번개장터에서 치이카와 상품 구매자의 86.8%는 여성이었다. 연령대로는 20대 48.8%, 30대 23.1%로 2030이 총 72%를 차지했다. 치이카와로 중고거래에 입문한 소비자도 나타났다. 영화 개봉 후 2주 간 번개장터에서 처음 안전결제로 구매한 이용자의 5.36%는 치이카와 상품을 구매했다. 지난 7월(0.65%)과 비교해 약 8배 늘어났다.
14일 오전 서울 용산구 아이파크몰 '치이카와샵'에서 굿즈 결제 대기 줄이 생길정도로 소비자가 몰렸다. /사진=박수빈 기자
14일 오전 서울 용산구 아이파크몰 '치이카와샵'에서 굿즈 결제 대기 줄이 생길정도로 소비자가 몰렸다. /사진=박수빈 기자
치이카와가 국내 2030 여성 팬들을 사로잡은 배경은 귀여움과 현실성이라는 낯선 조합에 있다. 소셜 빅데이터 분석업체 썸트렌드의 치이카와 언급량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공감 연관어로 자격증, 알바, 출근, 노동이 집계됐다. 소비자들은 "(세계관에서) 주택 청약도 있고, 제초자격증 공부도 하고, 마냥 편하게 살지 않는 모습들 때문에 현대인으로서 공감 가는 부분이 있다", "현실에서 울고 싶은 상황에서 참고 감춰야 하는데, 치이카와는 대신 울어준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팬덤의 애정은 굿즈를 모으고 교환하는 소비 행동으로도 이어진다. 랜덤 굿즈를 구매한 뒤 원하는 캐릭터를 얻기 위해 다른 팬과 상품을 교환하거나,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특정 캐릭터의 상품을 찾는 식이다. 번개장터 관계자는 "극장판 개봉 이후 치이카와를 처음 접한 이용자들이 번개장터에서 굿즈를 찾고, 이를 계기로 첫 거래를 시작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캐릭터 굿즈는 원하는 캐릭터를 모으거나 서로 바꾸려는 수요가 커서 개인 간 거래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팬덤의 '설렘'은 단순 '덕질' 소비를 넘어서 실질적인 경제 지표를 움직이는 '덕질 경제'로 자리 잡았습니다. K-컬처를 매개로 발생하는 모든 현상을 총망라해 대중의 열광이 어떻게 '설레는 소비'로 치환되는지 그 이면의 수익 구조와 비즈니스 모델을 날카롭게 포착하고자 합니다.



박수빈 한경닷컴 기자 waterbe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