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통일부에 출입하며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을 읽기 시작한 게 2017년 4월부터였습니다. 때로는 어이 없고, 때로는 한글인데 무슨 말인지 모르고, 때로는 쓴웃음도 나오는 북한 뉴스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오는 17일이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7주기다. 올해엔 여느 때보다 이 날짜가 국내 언론에 훨씬 많이 오르내리고 있다. 김정은의 서울 답방이 가시화된 상황에서 17일 전후로 일정이 정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북한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김씨 왕조’다. 북한 매체에선 이 3대 세습 독재자들을 김일성의 아내 김정숙과 함께 ‘백두산 절세위인(絕世偉人)’이라고 부른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선 아예 ‘백두산 절세위인들과의 일화’란 고정 코너가 따로 있다. 주민들의 사상 교육을 위해서다.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을 부르는 호칭도 정해져 있다. 김일성은 ‘어버이 수령님’, 김정일은 ‘위대한 장군님’이라 칭한다. 두 사람은 ‘영생 불멸의 존재’로 추앙받는다. ‘영원히 죽지 않는 신’ 답게 김일성과 김정일의 시신은 평양 금수산태양궁전에 영구보존 처리돼 유리관 속에 눕혀져 있다. 북한의 ‘4대 명절’인 김일성 생일(태양절, 4월15일)과 김정일 생일(광명성절, 2월16일), 북한정권 수립일(9월9일), 조선노동당 창건일(10월10일)을 비롯한 각종 행사에 김정은이 직접 참배한다. 일부 해외 사절단들도 가끔 북한의 요청으로 참배할 때도 있다.
지난 3일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 등에 보도된 김정은의 강원 원산구두공장 시찰을 보면 김일성과 김정일의 존재감이 여전히 매우 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북한의 각 주요 시설엔 ‘혁명사적 교양실’이 있다. 과거 해당 시설에 김일성 또는 김정일이 방문했거나, 해당 시설의 업종과 관련된 두 사람의 어록과 기록화를 전시하는 공간이다. 김정은은 원산구두공장의 혁명사적 교양실에서 “혁명사적 교양실 참관사업을 정상적으로 생활화하여 종업원들 모두가 위대한 장군님의 애국헌신의 발자취가 아로새겨진 공장의 연혁과 령도 사적을 가슴깊이 새기고 당의 방침관철투쟁에 적극 떨쳐나 높은 생산 성과로 위대한 장군님의 평생 념원을 현실로 꽃피워가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형적인 ‘유훈 통치’다.
물론 이런 형태는 세계에서 보기 드문 희한한 통치 시스템이다. 하지만 현재의 북한을 알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있는 그대로 봐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우스꽝스럽다 해도 이게 현실이기에.
[들어가며] 통일부에 출입하며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을 읽기 시작한 게 2017년 4월부터였습니다. 때로는 어이 없고, 때로는 한글인데 무슨 말인지 모르고, 때로는 쓴웃음도 나오는 북한 뉴스의 세계로 초대합니다.“조선로동당 위원장이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이시며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이신 우리 당과 국가,군대의 최고 령도자 김정은 동지.”북한 매체에서 김정은을 소개할 때 붙이는 길고 긴 수식어다. 특히 조선중앙TV에서 ‘특별한 일’(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 등)을 보도할 때마다 ‘분홍 저고리’를 입고 등장하는 간판 아나운서 리춘희의 목소리로 유명한 말이다. 리춘희는 저 단어들을 특유의 강렬한 억양과 커다란 목소리로 단숨에 읽어내린다.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두음법칙을 생략했다.)김정은을 대체 뭐라고 불러야 할까. 북한에선 김정은의 직책을 왜 저토록 길게 붙일까. 이건 기자 입장에서도 헷갈리지만 외교 무대에선 정말 머리카락 쥐어 뜯을 정도로 복잡하다. 김정은은 3대 세습 독재자다. 정확히 부르자면 ‘왕’이어야 할 것이다. 북한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김씨 왕조’니까. 하지만 그들은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표방한다. 사회주의 체제의 공화국 틀에서 왕이란 있을 수 없다.김정은의 직책을 전부 다 갖다 붙인 건 ‘왕이 아닌 왕’이란 아이러니한 상황을 반영하기 위한 북한의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당과 정부, 인민군의 모든 권력이 김정은 한 사람에게 몰려 있다는 뜻이다.한국 정부가 김정은을 ‘국무위원장’이라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때의 김정은은 정(政)의 대표자다. 삼권분립의 원칙상 대통령은 1차적으로 행정부의 수장이다. 이 때문에 그 많은 직책 중 국무위원장을 택하게 됐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김정은을 ‘체어맨 김(Chairman Kim)’이라 부를 때도 국무위원장이란 뜻이다.겉으로는 왕이 아니지만 실상은 ‘신’처럼 군림하는 김정은을 북한 뉴스에선 어떤 방식으로 표현할까. 우상화다. 북한 매체에서 김정은을 우상화하기 위해 동원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김정은이란 이름의 글자체가 다르다. 조선중앙통신이나 노동신문 등 주요 매체에선 김일성과 김정일, 김정은 등 이른바 3대 지도자의 이름은 다른 글자보다 훨씬 크고 굵은 고딕체로 사용한다. 이들 3대 세습 지도자의 이름은 특수문자로 인식되도록 자동 프로그래밍됐기 때문이다.두 번째는 온갖 화려한 미사여구를 붙이는 것이다. 가장 많이 쓰이는 말은 ‘경애하는 최고 령도자 동지’다. 문단마다 이 수식어로 시작한다. “경애하는 최고 령도자 동지”란 말만 걷어내도 기사 분량 중 적어도 5분의 1은 줄어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원수님’이란 단어도 많이 쓰인다. 여기서 ‘원수’는 국가원수(元首)이자 북한 군 최고 통수권자를 가리키는 ‘공화국 원수(元帥)’(우리가 생각하는 ‘원수(怨讐)’는 ‘원쑤’라 표기)의 뜻을 모두 포함한다. 보통 ‘수령님’은 김일성을, ‘장군님’은 김정일을 가리킨다.‘희세(稀世)의 천출(天出) 위인(偉人)’이란 수식어도 자주 등장한다. “세상에 드문 하늘에서 낸 위대한 인물”이란 뜻이다. 그런데 ‘천출’이 ‘천하게 태어나다(賤出)’과 음이 똑같아 쓴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지난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이 함께 백두산 천지에 올랐을 때 김영철 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의 ‘아부’가 화제였다. 김정은이 “춥다더니 춥지가 않네”라고 한마디 하자 김영철은 “백두산에 이런 날이 없습니다. 오직 국무위원장께서 오실 때만 날이 이렇단 말입니다. 백두산의 주인이 오셨다고 그러는 겁니다”라고 말했다. 교활하고 노회하기로 소문나 별명이 ‘승냥이’인 김영철이 73세의 나이가 무색하게 30대 중반의 김정은에게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그것이 북한의 현실이다. 그래야 살아남으니까. 북한 뉴스엔 그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들어가며]통일부에 출입하며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을 읽기 시작한 게 2017년 4월부터였습니다. 때로는 어이 없고, 때로는 한글인데 무슨 말인지 모르고, 때로는 쓴웃음도 나오는 북한 뉴스의 세계로 초대합니다.“미국의 늙다리미치광이를 반드시, 반드시 불로 다스릴 것이다.”(2017년 9월 21일 김정은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 성명’ 중에서)“김정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과 도날드 제이.트럼프 미합중국 대통령은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첫 력사적인 수뇌회담을 진행하였다.”(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공동성명 중에서)북한 뉴스에서 가장 드라마틱하게 달라진 점을 꼽으라면 단연 미국 관련 표현들이다. 1년 사이에 ‘불로 다스려야 할 늙다리 미치광이’에서 ‘도날드 제이 트럼프 미합중국 대통령’이 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대표적이다.미국을 지칭하는 말도 달라졌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철천지 원쑤’, ‘미 제국주의자(흔히 줄여서 ‘미제’), ‘초거대 반동책동자’등으로 썼지만 지금은 ‘미합중국’, ‘미국’ 등 중립적 단어로 바뀌었다.북한 매체에서 한국과 미국, 중국, 일본 등 주요국에 대해 어떤 수위의 표현을 쓰는지 읽는 건 취재기자 입장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 흐름의 변화가 정세를 판단할 때 좋은 힌트가 되기 때문이다.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26일자 6면에 실린 ‘인권 타령에 비낀 미국의 추악한 속내를 해부한다’는 논평을 한 번 보자. 미국 인권단체 ‘휴먼 라이트 워치(HRW)’의 북한 여성인권 보고서와 유엔 대북인권결의안에 대해 비난하는 내용이다. 이 글에선 우선 해리엇 비처 스토의 소설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에서 흑인 노예 톰을 잔혹하게 괴롭히는 백인 농장주 사이먼 레글리를 현재의 미국에 비유한다. 그러면서 “이런 자가 세상에 대고 그 누구의 ‘인권’을 떠들면서 ‘인권의 옹호자’로 행세한다면 어떻게 말해야 할 것인가”라며 “미국이 떠드는 ‘북조선인권문제’란 아무런 타당성도, 현실적인 근거도 없는 허위이며 궤변”이라고 주장한다.“있지도 않는 남의 허물을 들추기 전에 더러운 제 코부터 씻어야 한다”며 미국의 빈곤층, 학자금 대출 문제 등을 언급한다. “미국이 손짓하면 ‘지록위마’라는 성구가 그대로 통용되던 어제가 아니며 미국이 누구에게나 함부로 ‘죄인’의 감투를 씌우며 정의를 유린하던 시대는 영원히 지나갔다”고 강조한다.겉으로 보면 미국에 대해 상당히 적대적인 표현이 들어갔다. 하지만 이 정도 수위는 북한 뉴스 기준으론 아주 ‘점잖은’ 것이다. 주어가 ‘미국’이란 중립적 단어다. 욕설도 거의 없다. 북한 매체들은 유엔 대북인권결의안이 통과될 즈음이면 항상 이 테마로 미국과 유엔을 비난한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런 경우 기자 입장에선 이렇게 생각한다. “북한이 계속 ‘간 보기’를 하는 것 같다. 정말 판을 깨고 싶다면 그냥 들이받았을 텐데. 그럴 생각은 없는 것 같다. 밀당 좀 그만 하지.”북한 뉴스가 동원하는 욕설의 수준을 보기 위해선 북한 매체들이 흔히 ‘남조선 보수패당’이라 지칭하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 현 야당인 자유한국당 관련 논평을 읽으면 된다. “북한 욕의 팔 할은 뉴스에서 배웠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다.우선 이 전 대통령과 박 전 대통령은 ‘리명박 역도’와 ‘박근혜 역도’로 명칭이 통일돼 있다. 역도(逆徒)는 ‘역적의 무리’란 뜻이다. 북한의 대표적 대남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에선 25일 ‘초보적인 사리분별력마저 마비된 정신병 증상’이란 제목으로 자유한국당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논평을 냈다. 이 논평에선 자유한국당을 이렇게 묘사한다. “입에서 뱀이 나가는지 구렁이가 나가는지조차 모르고 씨벌대는 정신병자들의 광대놀음에 역겨움을 금할 수 없다.”최근 북한과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일본에 대해선 더욱 매몰차게 ‘전투적 단어’들을 퍼붓는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내각을 ‘아베 패당’이라 부른다. 노동신문에선 지난 9월 27일 ‘평화를 위협하는 사무라이 후예들의 광기’란 논평에서 “최근 일본 당국자들은 연일 우리와의 대화에 대해 운운하며 ‘새로운 시대’니, ‘평화와 번영의 주춧돌’이니 하고 광고하고 있다”며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보다시피 우리를 걸고 들며 조선반도와 지역의 긴장상태를 격화시키고 재침 야욕을 실현하려고 피눈이 되어 날뛰고 있다”고 주장했다.북한 뉴스에선 단어 하나 하나가 행간이다. 욕의 수위와 호칭 변화야말로 대표적 행간이다. 처음 볼 땐 눈이 지치고 피곤하며, 정신적 충격을 느낄 수도 있다. 문제는 처음 느낌이 그대로 간다는 것이다. 그래도 읽어야 한다. 일이니까.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국제사회에 선대와 정책 차별성 보이려는 시도" 해석도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조부인 김일성 주석의 사망일(7월 8일)에 금수산궁전을 참배했다는 보도가 9일 오전 현재까지 나오지 않고 있어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조선중앙통신은 북한의 당·정·군 고위 간부들이 8일 김 주석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다고 보도했으나, 그 명단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빠졌다.통신은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 박봉주 내각 총리를 비롯한 당과 정부의 간부들과 우당(友黨) 위원장, 당 중앙위원회와 정권기관, 성, 중앙기관, 무력기관 관계자들이 참배했다고만 전했다.김정은 위원장은 집권한 2012년부터 매년 김 주석 사망일 당일 0시에 조부와 부친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해왔고, 북한 매체는 이를 당일 오전 신속하게 보도해왔다.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김정은 위원장이 올해에는 김일성 사망일 참배를 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국제사회에 선대 지도자들과의 정책적 차별성을 우회적으로 보여주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고 추론했다.그는 "김 위원장은 북미정상회담이 열린 센토사섬에서도 자신은 선대 지도자들과 다르다는 점을 미국 측에 이해시키려고 했다"고도 했다.김 위원장이 현지지도로 지방에 있어서 금수산궁전 참배를 하지 못했을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실제로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은 지난 5일 평양 고려호텔에서 조명균 통일부 장관 등 남측 정부 대표단과 환담하면서 김 위원장이 남북 통일농구 경기를 관람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지금 우리 국무위원장(김정은)께서 지방 현지지도 길에 계시다"라고 설명했다.김 위원장이 '지방 현지지도' 중이었다고 공개된 5일로부터 나흘이 지나도록 김 위원장의 현장시찰과 관련한 내용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북한 매체들은 지난 2일 김 위원장의 신의주 일대 생산현장 시찰 소식을 보도한 이후 현재까지 김 위원장의 동정을 보도하지 않고 있다.이 기간 김 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직접 제안했던 통일농구 경기(4∼5일)도 열렸고,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의 방북(6∼7일)도 있었지만, 김 위원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