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고용하라” 청와대 앞 광장서 시위 > 고용노동부 산하기관 한국잡월드의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23일 청와대 앞 분수광장에서 ‘직접고용 지원서’를 청와대에 전달하기 위해 이동하던 중 경찰에 가로막혀 몸싸움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직고용하라” 청와대 앞 광장서 시위 > 고용노동부 산하기관 한국잡월드의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23일 청와대 앞 분수광장에서 ‘직접고용 지원서’를 청와대에 전달하기 위해 이동하던 중 경찰에 가로막혀 몸싸움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합의문은 국민과의 약속이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국회 정상화를 이뤄낸 다음날인 지난 22일 자유한국당 등 야당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홍 원내대표는 그러나 불과 하루 뒤인 23일 곧바로 자신의 말을 뒤집었다. 지난 5일 여·야·정 협의체에서 합의한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 연내입법을 철회한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다시는 여야 합의를 깨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던 여당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의 압박에 굴복했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약자 아니라더니”

문재인 대통령은 22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출범식에서 “(탄력근로제 확대에 대해) 국회에 시간을 더 달라고 부탁하겠다”고 했다. 경사노위에 불참한 민주노총을 달래기 위한 발언이었다. 문 대통령 발언이 나온 지 24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홍 원내대표는 연내 처리 합의를 없던 일로 만들었다.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사노위가 논의하겠다고 한다면 국회가 기다리는 게 사회적 갈등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이유까지 대며 민주노총의 손을 들어줬다.

청와대와 여당의 180도 달라진 행보에 그동안 노동계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던 목소리는 빈말이었느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민주노총은 더 이상 과거처럼 사회적 약자가 아니다’고 강경한 발언을 쏟아냈던 청와대는 정작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비준 등 노동계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하고 있는 상태다.
"민노총에 무슨 빚 졌길래"…해고자 노조 가입·전교조 합법화도 수용
여전히 목소리 높이는 민주노총

청와대는 여당과 함께 내년 2월 임시국회에서 ILO 핵심협약 중 결사의 자유, 단결권, 강제노동 폐기 등 네 가지 협약에 대한 비준동의 처리 방안을 추진 중이다. 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기도 하지만 탄력근로제 확대 문제로 현재 정부와 각을 세우고 있는 노동계를 달래기 위한 ‘당근’이라는 분석이다.

경사노위는 또 ILO 기준에 따라 해고자와 실직자의 노조활동이 가능하도록 법을 개정하라고 권고했다. 기업과 근로계약 관계가 없는 해직자와 실직자가 노조 활동을 하면 외부 정치 이슈를 끌어들여 사사건건 경영을 방해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지만,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낮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민주노총의 총파업을 두고 “탄력근로제 등 주요 노동현안을 사회적 대화를 통해 해결하지 못하고 끝내 파업을 선택한 것은 유감”이라고 날을 세웠지만 결국 노동계 손을 들어주고 있는 셈이다.

盧정부 트라우마 탓?

상황이 이렇지만 청와대는 되레 ‘반보(半步)’를 내딛고 있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고 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문재인 정부는 허심탄회하게 시민사회운동과 손잡고 대화하면서 국민 앞에 책임지는 결정을 내놓으려는 정부”라고 자평했다.

이 같은 청와대의 움직임은 노무현 정부의 트라우마가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조 수석 역시 “노동문제와 관련해 민주노총, 참여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 시민사회운동 진영의 대정부 공세가 강화되고 있다”며 “노무현 정부 출범 초기 상황의 ‘기시감’이 든다”고 표현했다. 파업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되찾아야 한다며 노동계의 지지를 호소했던 노 전 대통령은 결국 거센 반발에 부딪혀 국정 운영에 상당한 차질을 빚었다. 민주당 관계자는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바라본 문재인 정부가 결국 노동계와 타협을 택하고 있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야당은 “대통령 말 한마디에 여야 합의 사항을 손바닥 뒤집듯 바꿀 수 있느냐”며 즉각 반발하고 있다. 환경노동위원회 한국당 간사인 임이자 의원은 “도대체 이 나라 대통령이 맞느냐”며 “청와대가 탄력근로제 확대에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민주당이 국민과의 약속과도 같은 여야 합의 사항을 깼고, 협치도 무너졌다”고 말했다.

박재원/김우섭 기자 wonderf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