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6개월~1년으로 확대하기 위한 연내 입법이 좌절됐다. 주 52시간 근로제의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 지난 5일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 첫 회의에서 합의한 내용을 청와대와 집권 여당이 철회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에 굴복해 탄력근로제 확대의 연내 입법이라는 여야 합의를 뒤집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슈퍼甲' 민노총에…'헌신짝' 된 與·野·政 합의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출범식에서 ‘입법 유예’ 메시지를 낸 데 이어 23일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연내 입법 포기를 공식 선언했다. 홍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사노위가 출범해 논의하겠다고 한다면, 국회에서 기다렸다가 그 결과를 입법하는 것이 사회적 갈등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사노위 불참을 선언한 민주노총을 달래기 위해서라는 취지다.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은 이날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탄력근로제 확대의 연내 국회 처리에 반대한다”고 못을 박았다.

탄력근로제 입법화에 제동이 걸리면서 해고자의 노동조합 가입 보장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합법화 등 노동 현안은 물론 국민연금 제도 개편 등 사회적 문제에 이르기까지 노동계의 목소리가 더욱 커질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보수야당은 청와대와 민주당의 결정을 협치 파괴라고 규정하고 강하게 비판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도대체 대통령은 민주노총에 어떤 빚을 졌기에 기업의 고충을 멀리하는 것인가”라며 “국민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성토했다. 민주평화당의 장병완 원내대표도 “정기국회를 넘길 수는 없다. 연내 입법 처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경제계도 “우려가 현실이 됐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경사노위 출범 후 첫 안건으로 탄력근로제 확대를 채택한 것이 결국 민주노총을 위한 시간벌기용이었다”고 지적했다.

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