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회계기준(IFRS)을 제정하는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가 새 국제보험회계기준(IFRS17) 도입 시기를 기존 2021년에서 2022년으로 1년 연기하기로 14일 확정했다.

본지 11월5일자 A1, 10면 참조

IFRS17 1년 연기…보험사 자본확충 시간 벌어
보험 부채의 시가 평가를 핵심으로 하는 IFRS17 시행에 대비해 자본 확충과 전문인력 확보 등 새 회계시스템 준비에 비상이 걸렸던 국내 중소형 보험사들은 크게 안도하는 분위기다. 금융당국은 IFRS17과 동시에 도입할 예정이던 새 건전성 감독제도인 신지급여력제도(K-ICS·킥스) 시행도 연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안도하는 국내 중소형 보험사

IASB는 이날 영국 런던에서 열린 이사회에서 한국 미국 독일 일본 등 세계 각국을 대표하는 14명 이사들이 IFRS17 도입을 1년 연기하는 안건을 만장일치로 확정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IASB는 IFRS17과 연동된 IFRS9(금융상품 회계기준) 도입 시기도 1년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IFRS9은 보험사 보유 주식의 주가가 하락하면 곧바로 회계상 손실이 급증하는 등 자산운용 이익의 변화 폭이 커지는 방식이다.

IFRS17은 국제 보험업계의 회계 투명성을 강화하고 비교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IASB가 2021년 도입을 목표로 추진해온 국제 프로젝트다. 당초 IASB는 지난해 5월 IFRS17 기준서를 확정 발표하면서 2021년 1월1일을 시행일로 예고했다. 하지만 한국을 비롯한 국제 보험업계는 시행 시기 연기를 꾸준히 요구해왔다.

IFRS17 도입 시기가 1년 연기되면서 국내 중소형 보험사들은 안도하고 있다. IFRS17은 보험부채의 평가 기준을 원가에서 시가로 바꾸는 것이 핵심이다. 이렇게 되면 과거 고금리 상품을 많이 판매한 보험사들은 적립금이 크게 증가함에 따라 부채가 대폭 늘어난다. 보험사의 보험금 지급여력을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인 지급여력(RBC) 비율이 하락한다는 뜻이다. 국내 보험사들이 지난해 말부터 신종자본증권 및 후순위채를 잇따라 발행하고 인력 감축 등 ‘몸집 줄이기’에 나선 것은 IFRS17 도입에 따른 RBC 비율 하락을 막기 위해서였다. 한 중소형 보험사 임원은 “자본 확충과 전문인력 확보 등 새 회계시스템 준비를 위한 시간을 벌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여전히 시급한 전문인력 확보

2021년 시행을 고수하던 금융당국은 IASB가 연기를 결정함에 따라 IFRS17의 국내 도입을 위한 일정표 수정에 들어갈 전망이다. 금융위원회는 이날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IFRS17 시행 연기로 인해 보험사들이 늘어난 기간 동안 새로운 결산시스템을 보다 안정적으로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IFRS17 준비에 어려움이 발생하지 않도록 적극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보험업계는 IFRS17 도입이 늦춰진 만큼 당초 2021년 동시 도입 예정이던 킥스 시행도 연기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현 RBC 비율은 자산은 시가로, 부채는 보험 판매 시점의 원가로 평가해 산출하지만 킥스는 IFRS17처럼 부채도 시가로 평가한다. 이 경우 보험사 RBC 비율이 큰 폭으로 떨어진다. 이에 대해 금융위 관계자는 “IFRS17 논의 경과를 참고해 킥스 개편도 차질없이 준비할 계획”이라며 “추가 검토가 필요한 사항이 있을 경우에는 IFRS17 도입준비위원회 논의 등을 통해 반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IFRS17 시행이 1년 연기됐다고 할지라도 보험사들이 해결해야 할 숙제는 산적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전문인력 확보가 가장 큰 걸림돌이다. 보험업계에서는 IFRS17이 시행되면 3000명 정도의 보험계리사가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현재 등록된 보험계리사는 1260여 명에 불과하다. 시스템 개발이나 서버 용량 확충에도 최소 2000억원가량이 들어갈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서정환/이지훈/강경민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