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어느 한·독 커플의 특별한 결혼식
이달 초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특별한 결혼식에 초대를 받아 참석했다. 작년 말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가 알려지면서 많은 화제를 낳은 한·독(韓·獨) 커플의 결혼식이었다. 신랑은 독일 총리를 지낸 게르하르트 슈뢰더, 신부는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경제개발공사 한국대표인 김소연 씨.

양국의 유명 인사인 두 사람의 결혼식에 필자가 참석하게 된 데에는 약간의 사연이 있다. 필자가 회장을 맡아 활동하고 있는 월드클래스300 기업협회 일을 하면서 한·독 경제협력을 위해 활약해온 신부 김소연 대표와 업무상 인연을 맺게 됐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기업을 추구하는 중소·중견기업들의 결사체인 월드클래스300 기업협회는 세계적인 강소기업들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협회가 추구하는 ‘히든 챔피언’들이 많은 독일 기업들과 자주 접촉하면서 그들의 강점을 현장에서 배우는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 그 과정에서 김소연 대표는 현지 기업을 연결해주고 직접 통역도 하는 등 코디네이터 역할을 헌신적으로 해줬다. 이런 인연으로 결혼을 앞두고 작년 한국을 방문한 슈뢰더 총리는 일정을 쪼개 월드클래스300 회원사 기업인만을 위한 강연회를 열어주기도 했다.

결혼식을 현장에서 지켜보면서 독일이라는 나라에 대해 깊이 생각해 봤다. 두 사람의 결합은 한 독일인과 한국인 사이의 개인적인 인연이지만 넓게 보면 한국과 독일 두 나라의 상호 교류와 협력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독일은 한국과 깊은 유대관계를 맺어온 나라다.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따 식민지 조국의 기개를 과시한 것이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였다. 양국은 냉전 시대에 분단의 아픔을 경험한 공통점도 갖고 있다. 그래서인지 필자는 두 나라 사이에 남모르게 존재하는 ‘연민의 정’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실제로 독일은 6·25전쟁 직후 여러 경제적 지원과 혜택을 베푼 나라다. 1960~1970년대에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독일에 간호사와 광부로 파견돼 고국에 있는 가족을 위해 돈을 벌었다. 이들은 근면함과 성실성으로 ‘코리안 엔젤’로 불리는 등 독일인들의 가슴 속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독립운동을 하다 일제 탄압을 피해 독일로 간 이미륵이 쓴 자전적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는 독일 교과서에 실려 한국의 정신문화와 동양사상을 서구에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차붐’이라 불리며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했던 차범근 선수 또한 한국과 독일을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도 있다. 독일은 1954년 6·25전쟁에 참전한 유엔군을 지원하기 위해 80여 명의 의료지원단을 부산에 파견했다. 이들은 1959년 3월까지 서독적십자병원이란 이름으로 환자 진료(30만여 명), 출산 지원(6000여 명), 의료진 양성 사업 등의 의료 지원 활동을 펼쳤다. 1966년엔 개발원조사업의 하나로 나주 비료공장을 세우고 기술지원을 해줬다는 사실도 잊혀져 가고 있다.

김소연·슈뢰더 커플은 앞으로 한국과 독일을 오가며 양국에 도움이 되는 활동을 하겠다고 말했다. 슈뢰더 신랑은 “한국을 더 알기 위해 공부하겠다”고 했다. 축복 속에 이뤄진 두 사람의 결합이 두 나라의 애틋한 인연과 협력관계가 더욱 단단해지는 계기가 되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