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에서 최초로 탈원전 정책을 시행한 대만이 탈원전 반대 여론에 부딪혀 정책 폐기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치기로 했다. 지난해 8월 전 국토 46%의 전력 공급이 중단된 대규모 정전 사태가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전력 예비율이 올해 한 때 6%를 밑돌면서 대만 국민과 산업계 불안감이 또다시 가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력 예비율 적정 수준은 15%다. 대만 빈과일보는 반도체업체 TSMC가 1분간 정전되면 81억대만달러(약 2964억원)의 손해를 볼 것으로 내다봤다.
작년 '블랙아웃'에 혼쭐…脫원전 반대 여론↑
2012년 대만 총 전력 생산의 16.1%를 차지했던 원전 비중은 지난해 8.3%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대신 액화천연가스(LNG) 발전 비중은 26.9%에서 34.6%로 늘었다. 미국의 이란 제재로 국제 유가와 LNG 가격이 함께 오르면서 전력생산비용이 급증한 점도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대만에서는 탈원전법 폐기를 위한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다. 그러나 국민투표 의결에 필요한 법정 청원서 수인 28만1745건을 제출하지 못해 여러 번 무산됐다. 이번에 29만2654건의 청원서를 제출해 의결에 성공했다. 국민투표를 발의한 시민운동가 황쓰슈(黃士修·31)는 지난 23일 기자회견에서 “정부가 충분한 전력과 (석탄 발전으로 인해) 맑은 공기를 제공할 수 없다면 원전을 다시 가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석탄 발전을 통한 전력 생산 비중은 2012년 48.5%에서 지난해 46.6%로 큰 변화가 없었다.

이번 투표가 가결되기 위해서는 유권자 중 25% 이상이 투표해야 하고 투표자의 과반이 찬성해야 한다. 지방선거와 같이 진행되는 만큼 투표율이 높을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한 대만 칭화대 원자력과 교수는 “탈원전 폐기안을 포함해 총 10개의 국민투표가 동시에 이뤄지기 때문에 여론이 분산될 가능성이 있어 가결 여부를 확신할 수 없다”면서 “다만 이번 투표는 국민이 원전의 중요성을 재고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규/성수영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