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삶의 균형을 찾자는 취지의 주 52시간 근무제가 지난 7월1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은 그동안 한국 노동시장의 아킬레스건이던 ‘과로사회’ 이미지를 떨쳐버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새로운 산업을 찾을 수도 있고 고용이 늘어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반면 ‘적게 일할 권리’가 기업 경쟁력 저하와 업무 효율성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연구개발(R&D), 소프트웨어(SW), 정보통신기술(ICT)산업 등 새로운 기술을 개발할 때마다 많은 시간과 압축적인 노력,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분야와 산업에서 특히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애플과 구글, 페이스북 등 글로벌 기술기업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개인의 시간을 할애해 혁신을 창조한 영웅들이 있다. 새로운 미래가 태동하는 시기에 직원의 근무 시간을 강제로 제한했다면 이런 성공 신화가 가능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자동차산업에 후발주자로 뛰어든 국내 자동차 회사들의 성공도 마찬가지다.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기술력 확보에 매진한 결과물이다. 오랜 연구개발 끝에 1991년 상용화한 알파엔진(현대자동차의 한국 최초 독자개발 엔진)은 국내 자동차산업의 기념비적 성과이자 한국의 기술력을 세계 시장에 알린 대표적 성공 스토리로 거론된다.

당시 프로젝트를 수행한 수석개발자는 7년간 불철주야 연구에 매진했다고 한다. 자신이 속한 기업을 넘어 ‘국가를 위한 일을 하고 있다’는 사명감으로 버텼다는 얘기도 전해온다. 기업의 혁신과 도약을 위해 유연한 근무 환경 및 동기부여가 얼마나 중요한지 느껴지는 일화다.

필자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20년 전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컨설팅회사에서 강도 높은 업무를 경험한 적이 있다. 특히 중요한 의사결정에 도움을 주기 위한 높은 수준의 결과물을 내기 위해 필자가 속한 팀은 모든 열정을 쏟아부었다.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돌이켜보면 스스로가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됐고 지금의 필자를 만든 값진 경험이기도 하다.

일과 삶의 균형이 요구되는 지금, 장시간 근무를 당연한 것으로 요구할 수는 없다. 기업은 직원 개인의 행복과 성장을 보장하는 동시에 경쟁력을 확보해야 하는 난제를 안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직원들이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 특히 제한된 시간에 효율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는 유연한 근무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이런 환경은 직원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고,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면서 최상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발판이 된다.

주 52시간 근로시대 개막으로 국내 산업의 미래가 ‘일과 삶의 균형(워라밸)’ 담론에 밀릴 수도 있다. 그러다 보면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하는 미래 주인공들의 열정이 식을 수도 있고, 근로 의욕이 위축될 수도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세심한 준비가 필요하다.

효율적이고 유연한 업무 환경에서 직원은 자신의 역량을 극대화해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해야 하고, 기업은 뛰어난 인력을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개인과 기업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합리적인 접점을 찾아 ‘저녁이 있는 삶’ 속에서 우리 기업의 혁신이 지속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