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해금강의 눈부신 풍경.
‘바다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해금강의 눈부신 풍경.
한반도에 평화의 훈풍이 불고 있다. 앞으로 여러 가지 난관이 있겠지만 평화관광에 대한 열망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 코레일은 강원도와 함께 평화, 생태관광을 활성화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강릉선 KTX, 경춘선 ITX, DMZ 평화열차 등 강원권 철도를 활용한 다양한 여행상품을 내놓을 예정이다. 바야흐로 평화의 시대 금강산을 유람하고 저 멀리 백두산을 트레킹할 날이 머지않았다.

금강산 관광 전초기지 제진역의 풍경

제진역
제진역
예전에 금강산 관광이 활성화됐던 시절 금강산을 가려면 동해에서 배를 타고 꼬박 하루를 정박했다 들어가야 했다. 금강산을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남북출입사무소 안에 있는 제진역에서 감호역, 구읍역, 온정리역으로 동해 북부선 금강산 철길이 뚫린다면 불과 2시간도 걸리지 않고 금강산 입구까지 도착할 것이다. 코레일 측은 남북 합의만 이루면 당장이라도 철도 연결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제진역에서 ‘금강산 방면’이라고 쓰인 표지판을 보면 왠지 가슴 한 켠이 싸해진다. 제진역에 서면 보이는 ‘금강산 방면’ 표지판이 감개무량하게 느껴진다. 제진과 감호역 사이는 고작 11㎞밖에 안된다. 가까운 거리임에도 제진까지 들어가는 것에도 무수한 장애가 존재한다.

일단 제진역으로 들어서려면 두 차례 검문을 통과해야 한다. 육군 제22사단의 검문 초소를 통과한 뒤 출입사무소 게이트 출입 허가를 받아야 비로소 들어갈 수 있다. 제진역이 민간인통제구역 안에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승객이 없어서인지 잘 관리된 역사 안에는 쓸쓸한 적막이 숨겨져 있다. 철로는 붉은 녹이 가득 슬어 있었고, 제진역을 알리는 파란색 이정표지판도 세월의 흐름 속에 갈라지고 금이 간 모습이다. 매표소 위에 걸린 열차 시간표와 여객운임표는 텅 비어 있다.

열차는 2007년 5월 딱 한 번 달렸다고 한다. 북쪽 금강산 역을 출발한 북한 열차였다. 우리 열차는 북한 땅을 한 번도 밟아보지 못했다. 원래 동해선은 일제가 자원 수탈을 목적으로 건설했다. 함경남도 연변에서 강원도 양양까지 192.6㎞에 걸쳐 있었다. 강릉~제진 간 110㎞에 달하는 구간만 연결한다면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북한을 거쳐 대륙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그중 가장 먼저 도착하는 곳이 바로 금강산이다.

금강산은 우리 민족에는 명승지 이상의 느낌으로 다가온다. 수많은 선비가 금강산 유람을 버킷리스트로 여겼고, 송나라 시대의 시인 소동파는 “원생고려국 일견금강산(願生高麗國 一見金剛山)”이라고 했다. “내게 소원이 있다면 고려에 태어나서 한 번이라도 금강산을 보는 것이다”라는 뜻이니 그야말로 금강산에 대한 최고의 상찬이다.

금강산과 해금강 보이는 금강산 전망대

왕곡마을
왕곡마을
금강산을 더 또렷하게 볼 수 있는 곳은 남한에서 금강산 주봉 능선을 맨눈으로 뚜렷하게 볼 수 있는 DMZ 내부 717OP(금강산 전망대)다. 고성 통일 전망대보다 2㎞나 더 북쪽으로 올라가 있는 이곳은 과거 GP(전방 감시 초소)로 사용됐던 최전방 군 관측소다. 717OP는 1992년 신축 이후 한때 일반인 출입이 허용되기도 했지만 1994년부터는 출입이 금지되고 있다.

가는 길마다 철책선이 걸쳐져 있고 ‘미확인 지뢰지역’이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717OP에 도착하면 고성 통일 전망대와 흡사한 브리핑룸에서 주변 지형지물에 대한 설명을 먼저 듣게 되는데, 고성능 망원렌즈가 장착된 방송용 중계 카메라가 실시간으로 생생하게 북쪽 모습을 비춰준다. 왼쪽 바로 앞에 보이는 고지 너머로는 금강산 주봉 능선이 뚜렷하게 보이고, 정면으로는 최근 이산가족 상봉단이 온정리로 이동했던 도로와 북쪽으로 연결된 철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인다.

오른편 동해 쪽으로는 ‘바다의 금강산’이라는 해금강과 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의 모티브가 된 호수 ‘감호’와 부처 바위, 사공 바위, 외추도 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브리핑을 해주는 군인이 설명하는 대로 중계카메라가 정확하게 해당 지역을 비춰준다. 브리핑이 끝나고 난 뒤 한시적으로 개방된 야외 테라스로 향한다. 맨눈으로 금강산과 해금강을 바로 보니 가슴이 뭉클해진다. 관측소에서 10분 정도 내려가면 고성 DMZ 박물관이 보인다. 역시 ‘우리나라 최북단’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 민통선 안에 있어 출입신고가 필요하다.

영화 ‘동주’ 촬영지 ‘왕곡마을’

강원도 평화관광지는 아니지만 고성에 있는 왕곡마을은 꼭 가볼 만한 여행지다. 강릉 최씨와 강릉 함씨의 집성촌인 왕곡마을은 50여 가구가 한옥과 초가집을 짓고 사는 전통 마을이다. 이 마을의 역사는 고려 말 이성계의 조선 건국에 반대한 함부열이 간성에 은거한 이후 그의 손자 함영근이 지금 마을 터에 뿌리내리면서 시작됐다. 이곳의 가옥들에서 남쪽과는 확연히 다른 건축 문화를 만날 수 있다. 한국전쟁의 와중에도, 고성 산불의 재난에도 제 모습을 온전히 지켜냈다. 마치 시간이 거꾸로 흘러간 듯 마을의 모습은 현대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서울의 북촌과는 다르게 이곳은 소박한 한옥과 초가집이 대부분이어서 더 정겹게 느껴진다.

영화 ‘동주’ 촬영 장소로 유명한 이곳은 가을 풍경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마을 어귀부터 어른 키 높이만큼 자란 코스모스들이 군데군데 꽃밭을 이루고 있다.

고성=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

여행메모

강원 고성의 동해안 최북단 717OP(금강산 전망대)는 군부대의 협조가 있어야 출입할 수 있다. 봄·가을 여행주간에 한해 선착순으로 신청을 받아 하루 40명씩만 들어갈 수 있다. 한시적으로 출입을 허락한다. 올해 가을여행주간인 10월20일~11월4일에도 같은 방식으로 출입할 수 있다. 이 기간 강원도는 ‘DMZ 투어 위크’를 운영한다. 명사와 함께하는 DMZ 지역 5개 군 역사·문화·생태체험 이야기 투어를 진행한다. 원주 송암막국수는 비빔 막국수와 시래기 된장국이 별미다. 대진항 금강산횟집은 자연산 활어회와 해산물 반찬을 풍성하게 내놓는다.

고성군 토성면에 있는 델피노 골프 앤 리조트는 대명리조트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풍경도 좋고 숙박시설이 깔끔하다. 기업과 단체가 워크숍하기에도 좋다.

원주 오크밸리 리조트에서 운영하는 뮤지엄 산은 꼭 한 번 들러볼 만한 곳이다. ‘한국 관광 100선’으로 선정된 이곳은 세계적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국내 유일의 전원형 뮤지엄으로 여유롭게 예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