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주 52시간 근로제에 거는 기대
지난달부터 주 52시간 근로제가 시행됐다. 온전히 정착되려면 시일이 걸리겠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장 근로시간을 기록하는 한국 사회에 긍정적인 면도 많을 것으로 기대한다.

현대는 불확실성의 시대다. 글로벌 경기가 불확실하다, 수출의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표현이 뉴스에 단골로 등장한다. 의식주 해결이 인류의 당면 과제였던 과거에는 사회와 경제를 움직이는 요소가 한정적이었다. 하지만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발달해 생존을 넘어 개별 소비자의 세세한 취향까지 채워주는 경제로 변하면서 고려할 변수가 급격히 많아졌다.

개별 기업으로서도 과거에는 내수시장의 동종 업체만 신경 쓰면 됐지만 현재는 유사 업종의 세계 기업과 경쟁해야 한다. 글로벌 컨설팅회사에 다니던 지인의 말이 떠오른다. 예전에는 해외 기업 컨설팅 사례를 가져다 그대로 국내 기업에 적용하면 됐는데 외환위기 이후에는 그게 통하지 않는다는 넋두리였다. 한국 경제가 발전하면서 그만큼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앞날이 쉽게 예견되던 시대에는 과거에 해본 경험, 즉 노하우가 중요했다. 기존 경험을 토대로 빨리 재현해 내는 실행력이 그 사회의 주요 경쟁력이었다. 하지만 불확실성의 시대에는 아직 누구도 답을 찾지 못한 문제를 풀어야 한다. 정답을 빠르게 복제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답을 찾는 게 중요한 시대다.

그간 한국 경제는 빠른 추격자 전략으로 성장해왔다. 글로벌 기업이 이미 발견한 답을 한국 상황에 맞게 시뮬레이션하고 빠르게 구현하는 방식으로 급격히 발전했다. 그 덕분에 이제 새로운 분야나 기술을 개척하는 선도자에 가까워졌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건 상상력이다. 상상은 틀에 얽매이지 않고 생각을 넓혀나가는 작업이다. 개인 생활에 여유가 없다면, 사회 관점에서 구성원의 일상에 여유가 없다면 상상력을 발현하기 어렵다. 회의실에서 아이디어를 내려고 안달하다가 목욕이나 식사 시간처럼 의식이 느슨해진 상태에서 반짝이는 생각이 떠오르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필자가 운영하는 회사는 10여 년 전부터 매월 한 번 주 4일만 근무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시행 초기에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컸다. 마치 지금 52시간 근로제를 걱정하는 시선과 같았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회사 생산성에 긍정적일 것으로 판단해 꾸준히 이어갔고 지금도 안정적으로 운영 중이다.

이제 한국 경제는 기존 정답을 복제하는 방식만으로는 부족하다. 여유를 가지고 좀 더 생각을 넓히는 시간이 필요한 때다. 주 52시간 근로제 정착으로 사회 전반의 여유가 증대되면 한국 경제의 상상력도 넓어지지 않을까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