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핀테크 활용한 보험금 간편청구 못할 이유 없다
2000년대 초 미국에 처음 갔을 때 일이다. 금융 선진국이라는 나라에서 예상 밖의 충격적인 방식으로 계좌이체를 하고 있었다. 종이 수표에 금액을 적어 서명하고, 봉투에 넣어 우표를 붙여 보내야 했다. 이후 많은 은행에서 종이 수표 사진을 찍어 앱(응용프로그램)으로 전송하면 직접 은행이나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찾아가지 않아도 입금할 수 있는 서비스가 제공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시스템으로 절차가 간편해졌다 해도 여전히 종이에 쓰고 보내야 했다. 그러던 중 변방의 핀테크 업체가 종이도 공인인증서도 필요 없는 전혀 다른 송금·결제시스템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모바일로 비밀번호 몇 개를 누르면 실시간으로 계좌 간 이체가 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베이 전자상거래 결제시스템으로 등장한 페이팔은 전자결제가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이베이를 넘어서는 회사로 성장했고, 중국의 알리페이는 중국을 현금 없는 사회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영국의 조파, 미국의 렌딩클럽은 ‘개인 간 거래(P2P) 대출’이라는 예전에 존재하지 않던 형태의 플랫폼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들을 핀테크 기업이라고 부른다. 핀테크는 기술과 금융의 결합으로 존재하지 않던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들 기업은 여전히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므로 금융당국의 규제 영역에 속해야 하지만 존재하지 않던 형태의 비즈니스 모델인 만큼 기존 법제 아래서 존재하는 틀에 맞춰 관리하기는 쉽지 않다.

이와 같은 빠른 성장과 적절한 규제의 부재 속에 중국의 투롱지아와 같은 P2P 대출 회사들의 갑작스러운 파산으로 큰 피해를 입은 금융소비자 이야기가 들려오기도 한다. 기술과 산업의 성장을 장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적합한 규제와 소비자 보호도 함께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 시스템에 최적화된 규제들은 전에는 없던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 산업이 생겨나면 더 이상 적합하지 않은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시장에 미칠 영향이나 소비자 보호 등의 중요한 이슈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변화하는 규제가 혁신을 막고 서 있을 필요는 없다.

최근 건강보험 회사들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더 빠르고 쉬운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하는 도전을 하고 있다. 보험사별로 앱을 개발하고 스마트폰의 사진기를 활용하면 병원에서 진료받은 뒤 간단하게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다. 하지만 보험 가입자는 여전히 서류를 인쇄해 전달해야 하고, 보험사는 수동으로 그림파일을 분석해 보상액을 결정해야 한다. 디지털 정보가 병원에서 보험사로 바로 전송된다면 디지털화된 보험계약 정보와 연동돼 오류 없고 빠른 보상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문제가 우려된다면 조금 더 진보적으로 문제가 생기지 않을 시스템을 고민해보고, 가보지 않은 길이 걱정된다면 ‘규제 샌드박스’ 아래서 시범 운영 등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우리는 정보를 꼭 인쇄해 전달해야 하는 시스템에 어색하고, 기다림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시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비밀번호 몇 자리 누르면 거의 실시간으로 계좌이체할 수 있는 기술이 있는데, 오랫동안 해왔기 때문에 종이 수표에 이체 금액을 적고 서명해서 전달하는 것을 강요할 필요는 없다. 병원에서 진료받는 즉시, 또는 비밀번호 몇 자리 누르고 전송하면 실시간으로 보험금이 입금되는 날이 빨리 오기를 꿈꿔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