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선의 'ASEAN 톺아보기' (5)] '정직한 중개자' 역할 기대되는 印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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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열린 코리아오픈 국제탁구대회에서 남북한 혼합복식 팀이 중국 팀을 누르고 역전 우승한 장면은 감동적이었다. 지난 18일 인도네시아에서 개막한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도 여자농구, 카누, 조정에 남북한 단일팀이 출전했다. 계속되는 무더위를 상큼하게 씻어줄 또 다른 감동 스토리를 안겨줄지 기대된다.
인구 2억6000만 명의 인도네시아는 한국의 신남방정책 핵심 파트너다. 아세안 국가 중에서는 유일하게 우리와 함께 주요 20개국(G20) 및 믹타(MIKTA) 회원국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아세안 국가 중 첫 번째로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를 방문했고, 이는 최초의 국빈방문이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한·인니 비즈니스포럼에서 신남방정책을 추진할 것임을 공언했고, 조코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는 양국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기로 합의했다.
1965년 반둥회의 때 김일성 부자 방문
인도네시아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2차 세계대전 종식 후 독립한 신생국가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의 독립은 일본 점령으로부터의 해방과 동시에 찾아오지는 않았다. 지난 350년간의 옛 식민통치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네덜란드의 재점령 기도에 대항해 4년간 독립전쟁을 치러야 했다. 더구나 오늘날의 영토를 확보한 완전한 독립은 1963년 5월 네덜란드가 이리안 자야(현재의 파푸아주 및 서부파푸아주)를 이양함으로써 비로소 이뤄졌다. 인도네시아의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가 인도네시아의 독립과 건국을 이룩하는 데 반(反)식민주의, 반제국주의에 기초한 ‘자주와 능동의 외교(independent and active diplomacy)’를 추구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당시 동서 냉전체제 아래에서의 ‘자주와 능동’이란 어느 한 진영에 치우치지 않음을 의미했다.
인도네시아는 한국에 앞서 북한과 특별한 관계를 구축한 역사를 갖고 있다. 1955년 4월 반둥에서 제1회 아시아·아프리카 회의를 개최해 비동맹운동의 맹주가 된 수카르노 대통령은 1964년 11월 북한을 방문했다. 또 반제국주의 공동전선을 펼치기 위해 ‘자카르타-프놈펜-하노이-베이징-평양’을 잇는 축선을 구축할 것을 제창하기도 했다. 그리고 1965년 4월 북한의 김일성·정일 부자가 반둥회의 10주년 행사를 계기로 인도네시아를 방문한다. 항공기 여행을 기피했던 두 사람이 5000㎞가 넘는 거리를 함께 비행한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것이었다. 이때 수카르노 대통령은 맏딸 메가와티와 함께 김 부자를 환대했다. 이런 인연으로 훗날 대통령이 된 메가와티는 김정일 위원장의 초청으로 몇 차례 북한을 방문했다. 메가와티는 현 조코위 대통령의 집권당인 투쟁민주당의 대표다.
이런 인도네시아와 북한 간 특별한 관계로 인해 한국이 인도네시아와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한 것은 1973년 9월이 돼서다. 북한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와는 수교하지 않는다는 소위 ‘할슈타인 원칙’을 한국이 1973년 6월 폐기함으로써 이뤄진 일이다. 하지만 자원 부국인 인도네시아와의 협력관계는 1960년대 초부터 모색됐다. 1962년 재일동포 C씨의 주선으로 당시 도쿄를 방문 중이던 수카르노 대통령과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이 회동했다. 이를 계기로 1968년 칼리만탄(옛 보르네오) 섬에 제주도 넓이의 1.5배 정도 되는 27만 헥타르(ha) 산림 개발권을 얻었다. 이는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첫 번째 협력 사업이며, 한국으로서는 제1호 해외 직접투자라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 미수교 상태에서 시작된 한·인도네시아 협력관계는 지난 반세기 동안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루며 수많은 한국 기업의 성공신화를 만들어냈다. 우리가 만든 T-50 고등훈련기와 잠수함 등 첨단무기를 최초로 수출한 나라도 인도네시아다.
T50·잠수함 등 처음 수입한 나라
조코위 대통령은 지난 18일 아시안게임 개막식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을 초청했다. 대통령 특사로서 렛노 마르수디 외교장관과 메가와티 전 대통령의 딸인 푸안 마하라니 인력개발문화조정장관을 남북한에 각각 파견해 초청의 뜻을 전했다. 아쉽게도 두 지도자의 참석이 성사되지 않았지만 인도네시아는 남북한 모두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나라다. 김정은 위원장에게는 50여 년 전 자신의 조부와 부친이 함께 방문했던 흔적들을 새롭게 둘러볼 수 있는 기회였다.
인도네시아는 평양에 상주 대사관을 두고 있는 24개국 중 하나다. 모든 국가에 우호적(friend to all, enemy to none)으로 ‘자주·능동 외교’를 추구하는 인도네시아가 정직한 중개자(honest broker)로서 남북한의 화해와 평화 증진에 기여하고자 하는 노력은 매우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아시안게임에 즈음해 펼치는 인도네시아의 외교 노력이 어떤 장면으로 연결될지 잘 지켜보자.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원
김영선 < 前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 >
인구 2억6000만 명의 인도네시아는 한국의 신남방정책 핵심 파트너다. 아세안 국가 중에서는 유일하게 우리와 함께 주요 20개국(G20) 및 믹타(MIKTA) 회원국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아세안 국가 중 첫 번째로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를 방문했고, 이는 최초의 국빈방문이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한·인니 비즈니스포럼에서 신남방정책을 추진할 것임을 공언했고, 조코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는 양국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기로 합의했다.
1965년 반둥회의 때 김일성 부자 방문
인도네시아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2차 세계대전 종식 후 독립한 신생국가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의 독립은 일본 점령으로부터의 해방과 동시에 찾아오지는 않았다. 지난 350년간의 옛 식민통치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네덜란드의 재점령 기도에 대항해 4년간 독립전쟁을 치러야 했다. 더구나 오늘날의 영토를 확보한 완전한 독립은 1963년 5월 네덜란드가 이리안 자야(현재의 파푸아주 및 서부파푸아주)를 이양함으로써 비로소 이뤄졌다. 인도네시아의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가 인도네시아의 독립과 건국을 이룩하는 데 반(反)식민주의, 반제국주의에 기초한 ‘자주와 능동의 외교(independent and active diplomacy)’를 추구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당시 동서 냉전체제 아래에서의 ‘자주와 능동’이란 어느 한 진영에 치우치지 않음을 의미했다.
인도네시아는 한국에 앞서 북한과 특별한 관계를 구축한 역사를 갖고 있다. 1955년 4월 반둥에서 제1회 아시아·아프리카 회의를 개최해 비동맹운동의 맹주가 된 수카르노 대통령은 1964년 11월 북한을 방문했다. 또 반제국주의 공동전선을 펼치기 위해 ‘자카르타-프놈펜-하노이-베이징-평양’을 잇는 축선을 구축할 것을 제창하기도 했다. 그리고 1965년 4월 북한의 김일성·정일 부자가 반둥회의 10주년 행사를 계기로 인도네시아를 방문한다. 항공기 여행을 기피했던 두 사람이 5000㎞가 넘는 거리를 함께 비행한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것이었다. 이때 수카르노 대통령은 맏딸 메가와티와 함께 김 부자를 환대했다. 이런 인연으로 훗날 대통령이 된 메가와티는 김정일 위원장의 초청으로 몇 차례 북한을 방문했다. 메가와티는 현 조코위 대통령의 집권당인 투쟁민주당의 대표다.
이런 인도네시아와 북한 간 특별한 관계로 인해 한국이 인도네시아와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한 것은 1973년 9월이 돼서다. 북한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와는 수교하지 않는다는 소위 ‘할슈타인 원칙’을 한국이 1973년 6월 폐기함으로써 이뤄진 일이다. 하지만 자원 부국인 인도네시아와의 협력관계는 1960년대 초부터 모색됐다. 1962년 재일동포 C씨의 주선으로 당시 도쿄를 방문 중이던 수카르노 대통령과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이 회동했다. 이를 계기로 1968년 칼리만탄(옛 보르네오) 섬에 제주도 넓이의 1.5배 정도 되는 27만 헥타르(ha) 산림 개발권을 얻었다. 이는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첫 번째 협력 사업이며, 한국으로서는 제1호 해외 직접투자라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 미수교 상태에서 시작된 한·인도네시아 협력관계는 지난 반세기 동안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루며 수많은 한국 기업의 성공신화를 만들어냈다. 우리가 만든 T-50 고등훈련기와 잠수함 등 첨단무기를 최초로 수출한 나라도 인도네시아다.
T50·잠수함 등 처음 수입한 나라
조코위 대통령은 지난 18일 아시안게임 개막식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을 초청했다. 대통령 특사로서 렛노 마르수디 외교장관과 메가와티 전 대통령의 딸인 푸안 마하라니 인력개발문화조정장관을 남북한에 각각 파견해 초청의 뜻을 전했다. 아쉽게도 두 지도자의 참석이 성사되지 않았지만 인도네시아는 남북한 모두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나라다. 김정은 위원장에게는 50여 년 전 자신의 조부와 부친이 함께 방문했던 흔적들을 새롭게 둘러볼 수 있는 기회였다.
인도네시아는 평양에 상주 대사관을 두고 있는 24개국 중 하나다. 모든 국가에 우호적(friend to all, enemy to none)으로 ‘자주·능동 외교’를 추구하는 인도네시아가 정직한 중개자(honest broker)로서 남북한의 화해와 평화 증진에 기여하고자 하는 노력은 매우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아시안게임에 즈음해 펼치는 인도네시아의 외교 노력이 어떤 장면으로 연결될지 잘 지켜보자.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원
김영선 < 前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