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 제약·바이오주들이 상반기 결산 때 연구개발(R&D) 비용 회계처리 기준을 바로잡는다는 ‘고해성사’를 하고 있는 것은 금융당국의 테마 감리 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은 일부 바이오기업이 연구개발비를 자의적으로 비용이 아니라 자산으로 처리하면서 이익을 ‘뻥튀기’하자 테마 감리에 들어갔다. 금감원은 테마 감리를 마무리하고 곧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외부감사인과 협의해 금감원 눈높이에 맞추고 있다는 분석이다.
R&D 비용처리 늘리자… 메디포스트 적자 531만원→36억원으로
◆“임상 3상 후 확실한 사업만 자산처리”

15일 금감원에 따르면 줄기세포 치료제를 개발하는 메디포스트는 작년 감사보고서를 지난 14일 정정 공시했다. 회사의 자기자본(2017년 말 기준)은 1414억원(변경 전)에서 988억원으로 줄었다. 영업손실폭(531만원→ 36억원)도 커졌다. 올해 1분기 실적도 바뀌었다. 기존에 발표한 1분기 영업손실은 22억원에서 33억원으로 확대됐다. 기존에 무형자산으로 처리하던 연구개발비를 비용으로 계상하면서 이익이 쪼그라들었다는 분석이다.

차바이오텍 역시 정정 감사보고서를 통해 작년 자기자본을 4269억원에서 4091억원으로 수정했다고 공시했다. 기존 영업이익 1억원은 영업손실 67억원으로 뒤바뀌었다. 감사를 맡았던 삼정회계법인은 “개발 중인 무형자산과 무형자산손상차손이 과대 계상된 반면 연구개발비는 과소 계상된 오류를 수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회사 측은 “지난 3월 외부 회계법인과 연구개발비 처리를 두고 갈등을 겪으면서 감사의견 ‘한정’을 받았었는데 이를 모두 비용 처리하기로 했고, 이번에 감사의견도 ‘적정’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CMG제약(영업이익 23억원→16억원) 오스코텍(영업손실 16억원→58억원) 이수앱지스(영업손실 47억원→80억원) 등도 모두 재무 수치가 바뀐 감사보고서를 내놨다. 이 기업들도 연구개발비 비용인식을 늘리면서 영업이익이 깎였다. 메디포스트는 기존 연구개발비가 33억원에서 74억원까지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외부감사인인 다산회계법인은 “개발 중인 신약 중 임상3상 이후 발생한 지출로 정부 승인 가능성이 높은 프로젝트만 무형자산으로 인식하고 그 이전 단계에서 발생한 지출은 비용(개발비)으로 처리하기로 회사와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번 회계 고해성사는 금감원의 테마 감리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파악된다. 테마감리 타깃이 될 것을 우려한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기존 회계에서 연구개발비를 높여 처리하고 있다는 얘기다. 김형수 케이프투자증권 연구원은 “금감원이 연구개발비 처리와 관련해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있어 바이오업체들이 미리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바이오업체들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는 측면에선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바이로메드 제넥신 등은 한발 앞서 회계 기준을 바꾸면서 지난해 대규모 손실을 반영했다. 바이로메드는 지난해 1년 전의 세 배에 가까운 67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제넥신은 지난 2월28일 지난해 영업손실 규모를 64억원으로 잠정 공시했다가 3월14일 269억원 적자로 정정 공시했다. 파미셀은 무형자산으로 계상했던 개발비를 손상차손으로 떨어내는 과정에서 지난해 392억원의 순손실을 인식했다.

◆셀트리온 등은 정정 안 해

모든 바이오기업이 회계처리 기준을 변경한 건 아니다. 셀트리온과 씨젠 등은 현행 회계처리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해 이번 반기 결산에서도 재무제표를 수정하지 않았다. 지난해 전체 연구개발비 2268억원의 74.4%를 무형자산으로 처리한 셀트리온은 현재 국제회계기준(IFRS)의 개발비 무형자산 인식기준을 충족하고 있다고 밝혔다.

금감원 발표에 따르면 2016년 감사보고서 기준 152개 제약·바이오 상장사의 55%(83곳)가 개발비를 무형자산으로 계상하고 있다. 전체 잔액은 약 1조5000억원, 총자산의 4% 수준이다. 하나금융투자에 따르면 연구개발 비용의 무형자산 인식 규모가 큰 상위 10개 바이오업종 상장사는 셀트리온(지난해 말 기준 1688억원), 바이로메드(273억원), 씨젠(94억원), 삼천당제약(74억원), 오스코텍(56억원), 랩지노믹스(43억원), 인트론바이오(32억원), 코미팜(25억원), 애니젠(13억원), CMG제약(10억원)이다.

김동현/이태호/양병훈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