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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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에서 블록체인과 암호화폐가 일상으로 다가오고 있다. 점차 암호화폐를 통한 지불시스템이 보급되고 국제적으로 암호화폐 지위도 인정받는 추세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블록체인 규제안 마련이 늦어지고 있어 보다 발 빠른 대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22일 아르헨티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막을 내린 주요 20개국(G20) 3차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에서는 암호화폐의 등장을 글로벌 금융·경제시스템에 이점을 제공할 수 있는 기술혁신으로 규정했다.

암호화폐를 ‘암호화 자산’으로 정의하면서 기축통화의 주요 속성은 결여된 것으로 봤다. 더불어 자금세탁, 테러 자금 조달, 투자자 보호, 시장 건전성 확보를 위해 암호화폐에 적용할 수 있는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평가 표준을 오는 10월까지 수립할 것을 요청했다.

G20은 암호화폐로 대표되는 경제와 자산의 디지털화에 발맞추기 위한 국제 조세제도도 2020년까지 마련키로 했다. G20 국가들 합의를 기반으로 올해 각국 금융계좌 정보교환을 시작해 2020년부터는 G20 국가들에서 통용되는 조세 제도를 확립한다는 구상. 이를 통해 자산을 암호화폐 등 디지털로 전환시켜 조세를 회피하지 못하도록 할 계획이다.
G20 공동성명서 중 암호화폐 관련 부분 갈무리.
G20 공동성명서 중 암호화폐 관련 부분 갈무리.
각국도 관련 절차를 밟고 있다.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가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 승인 여부를 심사 중이다. 지난해 3월 비트코인 ETF를 신청했다가 고배를 마신 윙클보스 형제가 운영하는 암호화폐 거래소 제미니가 암호화폐 운용사 솔리드X와 공동으로 설계한 상품이다.

월가와 업계에서는 SEC가 비트코인 ETF 출시를 승인할 것으로 전망한다. 비트코인이 장기간 하락세에도 시가총액 1280억 달러(약 144조원) 규모를 유지하고 있으며, 미국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인 코인베이스가 스위스 증권거래소와 협력해 암호화폐 수탁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암호화폐 수탁서비스가 제공되면 기관투자자들이 대규모 자산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다.

지난해 3월과 비교해 규제가 보다 명확해진 점도 긍정적 요인이다. SEC는 암호화폐가 증권으로 분류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내놨고 미 연방 국세청은 암호화폐를 이용한 탈세를 막고 나섰다. G20도 암호화폐에 대해 디지털로 전환된 암호화 자산이라는 정의를 내렸다. 과거에 비해 암호화폐가 무엇이고 어떻게 규제해야 하는지 명확해진 만큼 SEC가 규제의 불명확성을 이유로 ETF를 불허할 가능성이 낮아진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제자리걸음 중이다. 당초 6·13 지방선거가 끝나면 정부기관들이 구체적인 규제안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지금도 별다른 움직임은 없다. 금융위원회가 암호화폐 관리감독을 맡을 금융혁신기획단을 신설한 것 정도가 눈에 띄는 변화다. 정부의 블록체인 육성안에서도 퍼블릭 블록체인은 배제됐고 암호화폐 공개(ICO) 금지 원칙 등도 유지되고 있다.

블록체인은 특정 국가에서 금지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국가가 블록체인에 금지 규제를 가해도 다른 국가에서는 개발이 이뤄질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에서 시작된 많은 프로젝트들이 스위스, 싱가포르 등지로 거점을 옮긴 바 있다. 디지털 기반이기에 빠르면 수 초 만에 지구 반대편으로 암호화폐 특성상 국경도 의미를 갖기 어렵다.

한국이 멈춰선 사이 세계 각지에서 암호화폐를 둘러싼 각국의 대응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도태될 바에야 암호화폐 투자 부작용만 규제하고 나머지는 시장 자율에 맡기는 편이 낫지 않을까. 많은 시장 참여자들이 최소한의 규제 외에는 포괄적으로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를 학수고대하는 이유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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