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권사들이 항공기 금융상품 주선 시장에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기관투자가들이 채권 이자보다 높은 수익률을 얻을 수 있는 상품으로 눈을 돌리고 있어서다.

항공기 금융이란 대당 1000억원을 웃도는 항공기 구매 부담을 줄이기 위해 담보대출이나 증권 형태로 외부자금을 모집하는 일이다. 가장 최근에는 부국증권이 DHL 미국법인이 빌려 쓰는 화물기에 투자를 주선하는 등 항공기 금융 투자 성공 사례가 속속 나오고 있다. 지구 반대편 항공기가 연 6%대 고정수익 증권으로 만들어져 팔려나가기까지 금융회사들은 어떤 ‘연금술’을 펼치는 걸까.
年 6%대 고정수익 '항공기 금융'의 연금술
年 6%대 고정수익 '항공기 금융'의 연금술
◆조세피난처 SPC가 판매

자본시장에서 거래하는 항공기 금융 상품의 경우 대부분 소유회사가 비행기를 항공사에 빌려준 뒤 매달 지급받는 임대료를 수익원으로 하고 있다.

일반적인 주식이나 채권 상품과 가장 큰 차이점은 모든 절차의 중심에 서류상 회사인 특수목적회사(SPC)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주로 조세피난처에 기반을 둔 SPC는 항공기의 주인이면서 임대인, 상품의 발행과 원리금(배당) 지급 주체 역할까지 모두 맡는다. 금융회사가 자기 장부로 감당하기엔 위험 부담이 너무 커 고안한 방식이다.

부국증권이 판매한 ‘흥국플라이트전문투자형사모투자신탁9호’ 상품의 경우 아일랜드에 있는 한 SPC가 이 역할을 했다. 2012년 문을 연 이 회사의 사명은 ‘4843FK3J(가칭)’와 같은 형태로 지어졌다. 이 회사는 100t의 화물을 적재할 수 있는 ‘보잉777-200LRF’를 소유하고 있다. 전 세계 항공기의 약 40%를 보유한 이 같은 ‘정체불명’ 리스 회사의 실질적인 운영 주체는 물론 금융회사들이다. ‘4843FK3J’에 화물 항공기를 주선한 영국 투자은행 인베스텍은 무려 500대, 80조원어치 항공기 금융 경력을 지니고 있다.

‘4843FK3J’는 인베스텍의 중개로 DHL 미국법인과 리스 계약을 맺으면서 새 상품의 주인공이 됐다. 2025년까지 비행기를 빌려주고 받는 임대료는 항공기 가치(상품 투자원금)의 7% 이상으로 알려졌다. 절세와 부채감소 효과를 얻기 위해 항공사들이 감내하는 높은 임대료는 고수익 상품이 등장할 수 있는 주요 배경이다.

◆‘입맛’에 맞게 가공해 펀드로 재포장

리스 계약을 마친 SPC는 최대한 많은 투자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상품의 ‘분류와 포장’에 들어간다. 이른바 △선순위(파산시 상환순위가 가장 앞섬) 대출 △중순위 증권(메자닌) △후순위 지분 또는 대출 형태의 가공이다.

국내 대체투자시장 전문가들에 따르면 선순위 대출은 주로 가장 보수적인 은행의 몫이다. 전체 차입금의 절반이 선순위라면 비행기값이 반토막나더라도 만기 때 원금을 건질 수 있다. 대신 연간 기대수익률(IRR)은 3% 안팎으로 낮다. 5% 이상 수익을 노리는 중순위는 보험사나 공제회, 증권사들이 선호한다.

가장 위험한 후순위는 전문 투자자들의 영역으로 셈법이 복잡해진다. 중고 비행기 값의 변동, 항공사 파산이나 사고 위험 등을 온전히 흡수해야 한다. 유지 관리가 엉망일 경우 분쟁을 촉발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상품을 설계한 금융회사가 후순위 투자자로 참여하는 게 일반적이다. 기대수익률은 연 8% 이상이다.

부국증권은 SPC로부터 2100만달러 규모 중순위 사모사채 물량 전부를 가져온 뒤 이달 초 국내 기관을 대상으로 판매를 완료했다. 최종 상품은 환율변동 위험 헤지를 거친 사모펀드 형태로 재포장했다. 거래를 주관한 강중원 부국증권 부장은 “투자자는 원화로 투자하고 연 6.6% 수준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여객·화물 수요 증가로 항공기 금융 시장은 매년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전문업체 보잉캐피털에 따르면 2018년 새 항공기 도입과 관련해 항공사들의 외부자금 조달 수요는 1390억달러(약 153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국내 최대 항공사인 대한항공도 2019년부터 2025년까지 102대를 122억달러(약 13조원)에 취득하는 계약을 맺었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