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운용역 열 명 중 한 명은 짐을 싼 것으로 나타났다. ‘적폐청산’을 앞세운 강도 높은 사정 작업으로 운용역들의 사기가 크게 저하된 탓이다. 그런데다 기금운용본부가 지난해 2월 전북 전주로 이전하면서 운용역들의 이탈을 가속화시켰다는 분석이다.

기금운용본부는 수장인 기금운용본부장이 1년째 공석인 상태에서 직무대리마저 사퇴하는 등 리더십 공백을 겪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핵심 실무 인력들의 ‘엑소더스’까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기금운용본부가 총체적 위기에 빠졌다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13일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에 따르면 현 정부가 출범한 작년 5월10일 이후 지난 6월 말까지 국민연금을 그만둔 운용역은 28명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현재 기금운용본부에 속한 운용역 246명의 11.4%에 해당한다.

전주 이전이 확정된 2016년부터 회사를 떠난 운용역은 71명에 달했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 기금운용본부를 나간 운용역(26명)의 2.7배나 된다. 기금운용본부의 핵심인 운용역들이 이탈하는 이유는 어수선한 국민연금의 내부 사정과 맞닿아 있다. 기금운용본부 주요 보직의 실장과 팀장들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찬성 등을 이유로 작년 내내 검찰 조사를 받았다.

기금운용본부 관계자는 “실무진이 ‘투자 결정 판단으로도 언제든 검찰에 불려갈 수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동요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서는 ‘일단 떠나고 보자’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직 수요가 늘면서 ‘몸값’도 낮아지고 있다. 과거에는 국민연금 운용역들이 연봉이 높은 외국계 자산운용사로 옮기는 사례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국내 증권사로도 이직이 쉽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퇴사한 6명의 운용역은 ‘미취업’ 상태다. 이직할 직장이 정해지지도 않았는데 그만두는 기금운용본부 인력이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신규 인력 충원에도 애를 먹고 있다. 상반기에 36명의 운용역을 뽑으려고 했지만 지원자가 적어 20명을 선발하는 데 그쳤다. 민간 업계에 비해 박한 급여와 본사 전주 이전에 분위기까지 흉흉해져 지원자가 적었다. 기금운용본부 전체 운용역은 246명으로 정부에서 인가받은 정원(278명) 대비 32명이 부족한 상태다.

김우섭/유창재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