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증시의 조정이 심상치 않다. 미국의 금리인상과 미·중 무역분쟁을 계기로 세계 주요 증시가 모두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홍콩 증시는 6월 중순 이후 가장 큰 낙폭을 나타내고 있다. 홍콩 증시에 직·간접적으로 투자한 국내 투자자들은 2015~2016년의 폭락이 재연될까 우려하고 있다.
홍콩증시 10% 급락… ELS 투자자 '가시방석'
◆주요국 증시 중 가장 성과 나빠

홍콩 증시를 대표하는 홍콩H지수는 지난달 21일부터 28일까지 6거래일 연속 하락하다 29일 반등해 11,073에 마감했다. 홍콩H지수가 6거래일 이상 연속으로 내려간 건 2017년 2월23일~3월3일 이후 1년4개월여 만이다. 홍콩H지수는 미국 중앙은행(Fed)의 기준금리 인상 직전인 지난달 8일부터 본격적인 조정에 들어갔다. 29일까지 하락률은 10.75%에 달한다.

최근 홍콩 증시 하락 폭은 세계 주요국 증시 중 가장 큰 편이다. 6월8일부터 29일까지(각국 현지시간 기준) 한국 코스피지수는 6.20%, 일본 닛케이225지수는 2.27%, 미국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3.84%, 유럽 유로스톡스50지수는 1.85% 떨어졌다.

홍콩 증시에 투자한 국내 투자자는 큰 폭의 손실을 보고 있다. 상반기(6월20일까지) 해외주식 ‘직구(직접투자)족’이 홍콩 증시 상장사 가운데 가장 많이 매수한 텐센트지주회사(매수금액 3억6579만달러·약 4085억원)는 29일 393.80홍콩달러로 장을 마쳐 8일부터 8.24% 떨어졌다.

펀드 투자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홍콩H지수 등락률의 2배 수준에서 손익률이 결정되는 레버리지 펀드 투자자의 손실이 특히 크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한화자산운용의 ‘ARIRANG 차이나H 레버리지(합성H)’ 상장지수펀드(ETF)의 최근 1개월간(29일 기준) 손익률은 -19.64%로, 조사 대상 724개 해외펀드 중 손실폭이 가장 컸다. 삼성자산운용 ETF인 ‘KODEX CHINA H 레버리지’는 3위(-19.25%),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인덱스로차이나H레버리지2.0자’는 5위(-18.93%)를 나타냈다.

◆2015년 악몽 재연될까

누구보다 홍콩 증시 조정을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은 주가연계증권(ELS) 투자자다. ELS는 올 들어 5월 말까지 월평균 6조9308억원이 발행돼 발행량이 작년(6조5179억원)보다 6.33% 증가했다. 이 중 70% 이상은 홍콩H지수가 기초자산으로 쓰인 ELS다.

ELS는 최장 3년인 투자기간 중 한 번이라도 기초자산이 50~55% 밑으로 떨어지면 손실가능 ELS로 전환된다. 홍콩H지수가 올해 최고점을 찍은 1월26일(마감지수 13,723.96) 손실구간 55%짜리 ELS에 가입한 투자자라면, 7548.17 밑으로 내려가는 순간 해당 상품이 손실가능 ELS로 전환된다.

강우신 기업은행 한남WM센터장은 “올해 발행된 ELS가 손실구간에 들어오기까지 아직 여유가 있는 편이지만, 홍콩 증시의 변동성이 매우 크다는 게 문제”라며 “2015년 5월부터 2016년 2월까지 1년도 채 안 되는 기간에 홍콩H지수가 반토막나는 걸 경험했던 투자자들은 벌써부터 불안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돈줄 죄기’ 영향

최근 홍콩 증시가 조정받는 또 다른 배경은 중국 정부의 금융시장 ‘돈줄 죄기’다. 이문 안다자산운용 홍콩법인 펀드매니저는 “중국 정부가 최근 자산관리 상품에 대한 규제정책을 발표하면서 본토에서 홍콩 증시로의 자금 유입이 급격히 위축됐다”고 설명했다.

홍콩H지수가 2015~2016년 조정의 최저점(장중 7498.81)보다 더 떨어질지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이 매니저는 “2015~2016년의 조정은 홍콩달러 가치 폭락, 은행대출 부실 등 금융위기로 촉발된 것이지만, 지금은 금융시장 건전화를 위한 중국 정부의 의도적 돈줄 죄기가 요인이어서 상황이 다르다”며 “중국 정부가 금융시장을 잘 통제하고 있는 만큼 추가 조정받더라도 1000포인트 안팎에서 방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김일구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연말까지 미국이 기준금리를 두 차례 더 올리면 홍콩으로선 자본 유출을 막기 위해 금리를 따라 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세계에서 가장 비싼 홍콩 부동산 시장이 타격을 받으면서 주식을 비롯한 전체 자산 시장으로 위기가 번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송종현 기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