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물은 배를 띄우지만 뒤집을 수도…
군주민수(君舟民水)는 《순자(荀子)》의 왕제(王制)편에 나오는 얘기다. ‘임금은 배와 같고, 백성은 물과 같다’는 것이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

정권은 선거를 통해 일정 기간 국가경영을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대리인’이다. 정권이 국가와 국민 위에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집권을 ‘국가 접수’로 여긴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 ‘코드’ 인사가 그 증거다.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정부 산하 16개 위원회 외부 위원 172명 중 62%에 달하는 106명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참여연대 등 좌파성향 단체 출신이라고 한다. 문재인 정부가 전면에 내세운 적폐청산도 독선적이다. 정치권력의 오만은 그 자체가 독이다. 지방선거 압승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지난달 15일 긴급 이사회를 열어 월성 1호기 원전의 조기폐쇄를 결정했다. 지방선거에서의 압승을 틈탄 기습 결정이 아닐 수 없다. 월성 1호기는 7000억원을 들여 2022년까지 수명을 10년 더 연장했다. 안전성엔 문제없다는 것을 한수원도 인정한다. 조기 폐쇄를 결정함으로써 국민 세금 증발 외에 주주에 대한 배임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조기 폐쇄로 재생에너지 등 다른 업체에 재산상 이익을 주고 정작 한수원에는 막대한 손해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한수원의 모기업인 한국전력은 지분의 43%가 민간 소유이고 외국인 지분율도 29%에 달한다.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은 지난달 14일 취임 1주년 기자 간담회에서 “대기업 총수 일가가 보유한 시스템통합(SI), 물류, 부동산 관리, 광고 등 비핵심 계열사나 비상장사 지분을 팔라”고 주문했다. 법적으로 강제할 내용은 아니지만 “팔지 않으면 공정위의 조사·제재 대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선거 압승에 기대 재벌개혁을 밀어붙이겠다는 것이다.

계열사 간 내부 거래는 ‘일감 몰아주기’로 불리며 여론의 뭇매를 맞아왔다. 하지만 긴밀하게 연결된 계열사 간 거래를 ‘사익 편취’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 일감 몰아주기의 위법 여부는 내부 거래가 ‘시장에서의 정상 가격에 의거해’ 이뤄졌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순리다. 더욱이 SI는 기업 집단의 정보 관리 시스템과 물류 체계를 구축·운영하는 계열사로 ‘영업 기밀’을 다루고 있다. 외부 업체에 맡길 경우 영업 기밀 노출은 불문가지다.

공정위원장 발언에 대한 우려감으로 삼성SDS 주가가 크게 하락했다. 발언 다음날인 지난달 15일 오전 10시 현재 전일 대비 10.72%(2만4000원) 내린 20만4000원을 기록했다. 위법 사실이 없는 기업의 주식을 가진 주주에게 손해를 끼친 것이다. 공정위원장이 주식을 팔라 말라 하는 것은 명백한 월권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하기로 했던 규제혁신 점검회의가 지난달 27일 회의 시작 세 시간 전에 전격 취소됐다. 취소 전 문 대통령과 이낙연 총리는 해당 부처로부터 회의 내용을 사전 보고받고 별다른 지적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취소가 이례적인 것은 구체적 취소 이유를 밝히지 않아서다. “미흡하다”가 이유다. 당일 점검회의 의제는 인터넷전문은행 은산분리 완화 방안, 개인정보 활용 범위 확대 방안으로 알려져 있다.

참여연대는 지난달 28일 “정부가 규제혁신 점검회의를 통해 추진하는 인터넷전문은행 은산분리 완화와 개인정보 보호 규제 완화는 관료와 업계의 요구일 뿐”이라며 “과거 보수정권의 경제정책을 이어가는 것을 결코 수용할 수 없다”는 논평을 냈다. 그동안 참여연대는 은산분리 완화와 개인정보의 빅데이터 활용 등에 반대해왔다. 혹여 회의 취소에 참여연대의 영향력이 행사됐다면 이는 국가 운영체제상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수렴청정(垂簾聽政)과 다를 바 없다. 시민단체 역할이 정부를 견제하는 것은 맞지만 시민단체가 선수(player)일 수는 없다.

국가개입주의가 제어되지 않은 채 위임받은 권력이 무소불위의 힘을 행사하고 주변 세력이 스스로의 이념과 가치를 절대선으로 여겨 이분법적인 선택을 강요하면 물은 배를 뒤집을 것이다. 반면 경제를 순항시키고 겸손한 자세로 국민과 소통하며 중장기적인 시각에서 국가 발전에 대한 실효적 비전을 세우고 이를 국민과 공유한다면 물은 배를 띄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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