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가 무겁다"는 윤종원… 靑 정책라인과 '화학적 결합' 가능할까
윤종원 주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대사(사진)가 경제수석에 기용되자 그를 잘 아는 한 경제관료는 “실력자의 귀환”이라고 했다. 윤 신임 수석은 기획재정부 중추인 정책라인의 ‘에이스 중 에이스’였다. 국제통화기금(IMF) 근무 시절 ‘인구구조 변화와 디플레이션의 상관관계’ 논문을 써 주위를 놀라게 할 정도로 경제이론은 물론 정책 실무에도 정통하다. 일 처리에 관한 한 완벽주의자다. 그래서 후배들 사이에선 모시기 까다로운 상사로 통하지만 선배들로부턴 신뢰가 두터웠다. 이명박 정부 말기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을 그만두고 IMF로 나갈 때 그를 아끼던 윤증현 전 기재부 장관은 환송식을 열어주며 ‘낭중지추(囊中之錐)’라고 치켜세웠다. 어딜 가나 재능이 돋보인다는 뜻이다.

그런 윤 수석이 문재인 정부 청와대 참모로 돌아왔다. 아직 프랑스 파리에 머물고 있는 그는 27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어깨가 무겁다”고 했다. 공식 임명장을 받기 전이라 정책 방향과 관련해선 언급을 피했다. 소득주도성장론으로 똘똘 뭉친 학자 출신 참모 진용에 관료 출신으로 혼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스스로에겐 적지 않은 부담일 수 있다. 소득주도성장에 기반한 정책이 시장에 먹혀들지 않아 고용과 분배지표가 악화되는 국면에서 일종의 ‘구원투수’로 기용됐다는 점도 부담 요인이다. 본인이 지난 35년간 경제관료로서 다져온 현실에 기반한 경제철학이 장하성 정책실장 등 정책라인의 ‘이상론’과 코드가 맞을지는 또 다른 문제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전날 인선 발표에서 윤 수석에 대해 “포용적 성장과 지속가능 성장을 강조하는 등 (이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높다”고 소개했다. 윤 수석은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에 파견돼 조윤제 경제보좌관 밑에서 일해 현 정부의 기본 철학을 잘 알고 있다. 정태호 신임 일자리수석 등 현 정부 핵심 멤버들과도 친분이 있다. 이런 이유로 작년 정부 출범 때 초대 경제수석 후보로 검토되기도 했다.

윤 수석은 OECD 대사 시절 일관되게 ‘포용적 성장’과 ‘지속가능 성장’을 주장했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포용적 성장은 소득주도성장과 결이 다르다. 윤 수석 밑에서 일했던 한 관료는 “소득주도성장을 기반으로 한 최저임금 인상, 법인세 인상 등의 정책이 주로 ‘윗돌을 빼내 아랫돌을 괴는 것’인 데 비해 윤 수석의 포용적 성장은 시장 경쟁 원리를 무너뜨리지 않되 사회안전망을 두텁게 해 소외계층을 보듬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수석은 지난해 한국경제신문에 칼럼을 연재하면서 이런 시각을 여러 차례 내비쳤다. 9월8일자 칼럼 ‘다가오는 미래에 준비돼 있는가’에서 “지금의 후진적 근로관행, 전투적 노조, 양극화된 노동시장으로는 미래에 대응할 수 없다”며 “진입장벽을 허물어 시장의 역동성을 살리고, 경쟁의 공정성을 강화하고, 사회안전망을 튼튼히 쌓는 게 해법”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그가 청와대 참모들과 ‘물리적 결합’을 넘어 ‘화학적 결합’으로까지 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윤 수석이 청와대 참모와 내각 간 ‘조율사’ 역할을 제대로 해낼지도 관심이다. 이 대목에선 우려보다 기대가 크다. 윤 수석과 김동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각각 주전공이 정책, 예산으로 달라 직접 호흡을 맞출 기회는 드물었다. 행정고시는 김 부총리가 1년 선배지만 일을 향한 열정과 전문성에선 서로를 존중한다. 청와대와의 소통이 힘들다는 게 기재부 불만인 만큼 윤 수석이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 윤 수석은 토론을 통한 설득이 몸에 밴 만큼 조율에 능하다.

청와대 관점에서 보면 기재부를 장악하는 수단으로 윤 수석을 활용할 수도 있다. 기재부를 훤히 아는 윤 수석을 내세워 기재부 길들이기에 나설 것이란 얘기다. “이번 청와대 인사의 핵심은 부처 장악”이라는 평가가 일부에서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