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철수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이나 북한이 다양한 이유로 한국 압박용으로 사용하던 주한미군 철수 카드가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 입에서까지 나오면서 걷잡을 수 없는 수준까지 치달을 조짐을 보였다. 청와대가 2일 ‘주한미군 정당성’ 논란의 긴급 진화에 나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미 동맹이 훼손될지 모른다는 우려와 목전에 둔 북·미 정상회담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확산되는 주한미군 철수 논란

주한미군 철수 주장이 나오는 것은 평화협정 때문이다. 정전체제에서 한반도 안보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주둔하고 있는 게 주한미군인 만큼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면 미군이 한국에 주둔할 명분도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가 언론 기고문에서 “평화협정이 체결된 뒤에는 한국에서 주한미군의 지속적인 주둔을 정당화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힌 것도 이런 맥락이다.

문 특보의 설화로만 넘길 수 없는 건 미국에서도 주한미군 철수 얘기가 나오고 있어서다.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이 남북한 정상회담 직후인 지난달 27일 기자간담회에서 ‘남북이 평화협정을 맺은 뒤에도 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할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에 “우선 동맹국들과 논의하고, 북한과도 논의할 문제”라며 주한미군의 철수 가능성을 시사했다. 백악관 2인자인 존 켈리 비서실장도 주한미군 논란에 불을 지폈다. NBC는 1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평창동계올림픽 전 주한미군을 철수하려던 것을 켈리 비서실장이 만류해 단념시켰다고 보도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을 시사하며 한국을 압박하기도 했다.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춤을 출 것’이라는 해리 해리스 미 태평양사령관의 말처럼 북한이 원하는 방향대로 한반도 정세가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 전까지 줄기차게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한 북한 매체들이 정상회담 이후에도 주한미군에 대해서만 시종일관 비난하는 것도 이런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주한미군 철수 가능한가

하지만 청와대는 평화협정 체결 뒤에도 주한미군 철수는 없다고 못박고 있다. 그러면서 문재인 대통령과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문 특보에게 ‘옐로카드’를 꺼내들었다는 점도 공개했다. 그만큼 주한미군 철수가 지닌 정치적 민감성을 감안했다는 분석이다.

청와대는 평화협정 추진 과정에서 중국이나 러시아 등에서 철수 주장이 나오더라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중국과 일본 등 주변 강대국의 군사적 긴장과 대치 속에 주한미군이 동북아 평화의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통일부 고위당국자도 이날 “앞으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한반도의 평화적인 상황 관리가 지금보다 더 중요해질 수 있다”며 “한·미 동맹과 주한미군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판단을 기본적으로 하고 있다”고 했다. 평화협정이 체결돼도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주한미군은 중국을 견제하거나 동북아시아 안정을 위해 계속 주둔할 수 있다는 얘기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일본에서도 1951년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 미·일 안보조약을 근거로 미군이 계속 주둔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의 강력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향후 미·중 관계나 미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주한미군의 감축 또는 철수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논란이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재임 시절 주한미군 철수를 추진했다가 미 국방부와 한국 정부, 일본 등의 격렬한 반발로 계획을 철회했다. 한승주 전 외무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까지 주한미군 문제를 일종의 거래 조건처럼 여겨온 경향이 컸다”며 “주한미군이 단순히 남북문제가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 견제, 동북아 정세 주도권 우위 등 여러 가지 복잡한 사안을 끌고 가는 주요 변수임을 깨닫게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아/정인설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