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암괴석과 해안절경이 연이어 펼쳐지는 행남해안로.
기암괴석과 해안절경이 연이어 펼쳐지는 행남해안로.
울릉도는 사계절 어느 때나 가도 좋지만 신록의 물이 오르는 울릉도의 봄은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섬은 온통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하다. 신화와 전설, 설화의 무대뿐만 아니라 황홀한 구경거리로 가득한 울릉도에서는 많이 걸을수록 더 깊이 볼 수 있다. 울릉도를 걸으면 눈부신 풍경에 압도당한다. 봄의 끝 무렵 울릉도로 행복한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

신화와 전설이 꿈틀대는 울릉도

묵호와 울릉도 사이를 운행하는 여객선 '씨스타호'
묵호와 울릉도 사이를 운행하는 여객선 '씨스타호'
울릉도는 도둑과 공해 뱀이 없고 물과 미인, 돌, 바람, 향나무가 많다 하여 3무(三無) 5다(五多)의 섬으로 불린다. 뱃길이 멀고 쉽게 들어가기 어려운 섬이다 보니 자연이 잘 보존된 곳이기도 하다.

울릉도에 입도하면 울릉도의 수호신전인 성하신당에 먼저 입도 신고를 해야 마땅하다. 신전의 주인은 동남동녀, 두 어린 신이다. 이들은 어찌하여 울릉도의 수호신이 된 것일까. 조선시대 섬에 대한 국가의 정책은 섬을 비우는 공도(空島)정책이었다. 섬이 왜구의 근거지가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조정에서는 섬에 사람이 사는 것을 금했다. 그래도 뭍에서 살기 힘든 사람들은 기어이 섬으로 숨어들었다. 태종 시절, 삼척만호 김인우는 섬에 사는 자들을 잡아들이라는 조정의 명을 받고 안무사가 돼 울릉도에 도착했다. 전함 두 척을 이끌고 황토구미에 정박한 뒤 안무사는 섬에 숨어 살던 사람들을 샅샅이 잡아들였다. 육지로 출항하기 전날 밤, 안무사의 꿈에 동해의 해신이 나타나 어린 소년과 소녀 한 명씩을 두고 가라고 명했다. 하지만 안무사는 해신의 명을 무시하고 배를 출항시켰는데 배가 돛을 올리자 거센 풍랑이 일었다. 며칠이 지나도 바람은 자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안무사는 문득 해신의 명이 생각났다.
다양한 산나물이 입맛을 돋우는 울릉도 산채 정식
다양한 산나물이 입맛을 돋우는 울릉도 산채 정식
안무사는 섬사람을 배에 태운 뒤 어린 소년과 소녀 한 명씩을 뽑아 심부름 보냈다. 자신이 머물던 집으로 가서 필묵을 가져오게 한 것이다. 아이들이 배에서 내리자 안무사는 돛을 올리고 출항을 명했다. 바람은 이내 잠잠해졌다. 뭍으로 돌아온 뒤에도 김인우는 소년, 소녀를 버리고 온 일이 마음에 걸렸다. 8년 후 김인우는 다시 안무사가 됐다. 울릉도에 도착한 김인우는 그가 머물던 거처를 찾았는데 그곳에는 서로 꼭 껴안고 죽은 소년, 소녀의 백골이 있었다. 김인우는 그곳에 사당을 짓고 소년, 소녀의 상을 모셨다. 성하신당의 내력이다. 설화는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인신공양 풍속이 남아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인신공양 과정에서 직접적인 폭력 대신 간계가 등장하는 것은 그런 행위가 법으로 금지됐기 때문이다. 성하신당, 밀랍으로 빚어진 동남동녀상은 실물처럼 생생하다.

행남 해안로 산책길로 일품

성하신당의 설화는 울릉도 3대 비경의 하나인 삼선암으로 이어진다. 석포 전망대에 서면 삼선암의 풍경이 선계인 듯 아련하다. 비경은 대개 그에 값하는 신화나 전설을 품고 있기 마련. 삼선암 또한 예외는 아니다. 아득한 옛날 세 선녀가 자주 울릉도 부근 바다에 내려와 물놀이를 즐기다 승천하고는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선녀들은 옥황상제의 명을 받은 호위장수의 보호를 받으며 울릉도 앞바다로 내려와 노닐었다. 물놀이에 열중해 있던 두 언니 선녀는 막내 선녀가 호위장수와 통정하는 것을 목격했다.

언니 선녀들은 옥황상제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서둘러 하늘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막내 선녀의 옷이 사라지고 없었다. 막내를 버려두고 둘이서만 돌아갈 수가 없어 함께 옷을 찾다 선녀들은 천계로 승천할 시간을 놓치고 말았다. 이 사실을 안 옥황상제는 분노에 사로잡혀 세 선녀와 장수를 바위로 만들어버렸다.

신화뿐이랴. 울릉도는 가는 곳마다 신화적 풍경이다. 통구미 거북바위, 곰바위나 학포 만물상은 제주도와 금강산을 동시에 온 듯한 환각이 일게 한다. 성인봉 북쪽의 나리분지는 울릉도에서 유일한 평지다. 옛날 첫 이주민이 섬말나리 뿌리를 캐먹고 연명했다 해서 나리골이란 이름을 얻었다. 이곳의 울릉도 전통 가옥인 너와집과 투막집 앞에 서면 시간여행을 떠나온 듯 아련해진다. 울릉도의 중심지 도동항 오른쪽 산기슭의 수령 2000년 된 향나무는 울릉도의 상징이자 신목이다.

향나무어르신은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깨달음을 얻게 해준다. 저동은 울릉도 어업 전진기지인데 퍼덕퍼덕 뛰는 해산물을 맛보기에 더없이 좋은 어항이다. 봉래폭포 가는 길의 삼나무 숲은 여행의 피로를 풀어주는 최상의 삼림욕장이다. 행남해안로는 울릉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책로로 꼽힐 만하다. 산책하면서 보이는 기암괴석과 해안절벽이 일품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해안 산책로인 행남해안로는 저동에서 도동까지 약 2.7㎞의 길이다. 행남해안로는 누구나 쉽게 산책할 수 있도록 길이 잘 조성돼 있다. 신비한 섬의 해안 절경을 감상하려면 버스투어가 좋다. 울릉도 해안은 길이가 약 56.5㎞에 이른다. 버스로 한 바퀴 돌아보는 데 4시간 정도 걸린다. 해상 관광 포인트는 서면으로 가면 볼거리가 풍부하다. 북면 천부리의 송곳산을 비롯해 공암(일명 코끼리바윗) 노인봉 등. 그 밖에 삼선암과 나리분지, 관음도 등도 눈여겨 볼 만하다.

여행메모

서울·경기지역에서 울릉도로 가기 위해서는 강원 강릉(안목항) 또는 묵호항에서 출발하는 게 좋다. 씨스포빌에서 운영하는 선박은 총 4척, 강릉~울릉 2척과 묵호~울릉 2척이 매일 출발한다. 주말에는 배표 구하기가 힘드니 미리 예약해두는 것이 좋다. 도동항·저동항에는 홍합밥과 따개비밥, 물회 등을 내는 식당이 많다.

누림여행사는 울릉도의 환상적인 풍경을 즐길 수 있는 2박3일 상품을 내놨다. 상품은 울릉도의 주요 관광지인 저동항, 태하 해안산책로길 등을 샅샅이 훑어볼 수 있도록 구성됐다. 매일 출발하며 왕복셔틀버스 비용과 숙식(2박6식) 관광지 입장료, 선박 비용까지 모두 포함돼 있다. 22만원(6인실)부터~33만5000원(2인1실)까지 있으며 민박, 모텔, 호텔 등 숙소 타입에 따라 가격이 결정된다. 독도를 관람하고 싶다면 추가 요금(5만6500원)을 내면 된다.

김하민 여행작가 skyc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