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라고 다 신사·숙녀?… 골프, 실력보다 '매너'가 먼저
“골프가 신사의 나라 영국에서 발상했지만, 이젠 가장 ‘비(非)매너’ 스포츠가 돼버린 것 같아.”

얼마 전 함께 라운드를 한 지인이 재미있는 말을 했습니다. 골프가 룰과 에티켓 준수를 철저히 지향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매너 꽝’인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아마추어 골퍼들, 룰 위반을 밥 먹듯이 저지릅니다.

상대가 신중한 버디 퍼트를 하는데도 자신이 조금 전 퍼트 실수한 게 아쉬워 연습 시늉으로 미스를 유발하는 일, 세컨드 샷을 하려는 옆을 저벅저벅 걸어가면서 집중력을 흩뜨리는 일, 일명 ‘구찌’로 어프로치를 방해하는 일 등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스코어를 깎아 먹는 사례, 부지기수입니다.

프로라고 다 신사, 숙녀가 아닙니다. 지난 3일 새벽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메이저 대회인 ANA 인스퍼레이션. 8차 연장에서 박인비(30)를 제치고 우승한 퍼닐라 린드베리(32·스웨덴)는 ‘슬로 플레이’로 빈축을 샀습니다.

린드베리가 8차 연장에서 그린에 공을 올려놓고 마크한 다음 실제 퍼팅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2분이 넘었기 때문이죠. 린드베리는 대회 내내 퍼트를 하려다 자세를 풀고, 클럽 선택에도 긴 시간을 할애하는 등 다른 선수보다 훨씬 시간을 많이 썼습니다.

절대 감정을 드러내는 법이 없는 박인비지만, 플레이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어 린드베리가 우승을 빼앗아 간 꼴이 됐죠. 세계 골프규칙을 총괄하는 영국왕립골프협회(R&A)와 미국골프협회(USGA)는 슬로 플레이에 벌타를 주거나 실격 처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샷당 40~50초의 제한 시간을 두고 있어 린드베리가 2분 이상 지체했으면 페널티를 받아야 하지만 시즌 첫 메이저 대회인 데다 연장전인 만큼 조용히 넘어갔습니다.

독자 여러분은 린드베리의 ‘비매너’를 비난만 할 게 아니라, 실제 라운드에서 동반자들로부터 ‘매너 좋다’는 소리를 듣게끔 항상 점잖은 매너를 유지해야겠습니다.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 상대방은 늘 봄바람처럼 대하고 스스로에게는 가을 서리처럼 엄하게 하라).’ 채근담에 나오는 격언이지만 골퍼로서 평생 지녀야 할 좌우명이기도 합니다.

김수인 < 골프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