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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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에)농수산물 제외하면 그 다음에는 전통시장 제외하자고 할 거고, 그 다음에 중소기업 제품도 제외하자고 할 거고...그러면 이 법 취지가 몰각될 수밖에 없지요?”

김기식 금감위원장은 2015년 9월 10일 ‘부정청탁방지법(김영란법)’에서 농수산물을 제외하자는 같은 당 김기정 의원의 말에 이같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농수산물을 빼고 입법이 되면 법체계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의견이었다. 3·5·10 준수 규정 때문에 농·어민 등이 피해를 본다는 지적에도 준법을 강조했다.

김 원장은 이 발언을 하기 세 달 전 피감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3770만원을 지원한 9박 10일간의 미국ㆍ유럽 출장을 다녀왔다. 이밖에도 2014년 3월 한국거래소 지원(457만원), 2015년 5월 우리은행(480만원)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김영란법의 제안자라는 사실이 무색하게 자신은 ‘관례’라는 이유로 법망을 빠져나갔다.

김 원장은 정무위 시절 ‘저승사자’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피감기관과 정부에 날을 세웠다. 2015년 9월 18일에는 세종에서 서울로 출근하는 공무원을 위해 만들어진 스마트워크센터를 두고 “국민의 이런 막대한 세금을 들여서 공무원들이 소위 ‘땡땡이’치는 수단으로 이용된다면 이건 근무 기강 문제를 넘어서 세금 낭비의 아주 전형적인 사례”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기업의 일감몰아주기와 관련해선 “총수 일가에게 부당이득을 제공한 혐의가 있다면 조사를 확대해야 할 것(2015년 10월 6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김 원장 정작 자신은 소장으로 있던 씽크탱크 더미래연구소에 연구용역을 몰아줬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더미래연구소는 2016~2017년 △사이버테러방지법의 주요 쟁점 분석을 통한 입법 타당성 평가(정보위) △시민참여미디어의 현황과 실태 및 정책 제안(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 △국책연구기관의 연구의제 선정과정 개선(정무위) △국회 연구지원조직의 역할과 재구축 방안(운영위) 등의 보고서 등을 수의계약 형식으로 수주했다.

“30만 원 안에서 받았다 하더라도 특정한 부서의 특정한 어떤 개인이 특정한 기관에 매달 가서 강연을 한다는 것은 부적절해 보이지요? 그것은 부적절한 유착관계의 의혹을 갖기에 충분하지 않습니까?(2014년 10월 24일 국감에서 이성보 국민권익위원장에게)” 김 원장은 피감기관이 강연을 문제 삼았다. 하지만 김 원장은 자신이 소장으로 있는 더미래연구소에 대기업과 금융회사들의 대관 업무 담당자들이 수백만원의 비용을 내고 강의를 듣는 것엔 눈을 감았다. 이들은 국회 정무위가 피감기관으로 삼고 있는 산업ㆍ기업은행, 예탁결제원, 한국거래소, 코스콤 등의 임직원들이다.

김 원장은 2014년 10월 15일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을 두고 “금융당국은 그 어느 영역보다 신뢰와 안정감, 권위가 중요하다”며 “물러나실 생각 없으세요? 참 부끄러움을 모르시네”라고 하기도 했다. 이날 김 원장에 대한 리얼미터 여론조사에 따르면 ‘부적절한 행위가 분명하므로 사퇴해야 한다’는 응답이 50.5%로 집계됐다. 정부·여당은 김 원장을 “야당의 인격살인 정치공세가 계속되고 있다”고 엄호하고 있다.

배정철 정치부 기자 b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