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 이미지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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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후죽순(雨後竹筍). 비가 온 뒤에 죽순이 무성하게 솟아오르는 모습을 의미한다. 최근 블록체인 시장이 이와 비슷한 모양새다. 정부가 암호화폐 거래 계좌 개설을 막고 국내 암호화폐공개(ICO)를 금지한 채 관련 산업을 방치하고 있지만, 블록체인을 앞세운 서비스는 매일같이 등장하고 있다.

혁신성으로 기존 시장을 대체하겠다는 이들의 난립은 과거 닷컴 열풍을 떠올리게 한다. 1999년 말에서 2000년 초 IT 버블이 일며 닷컴 이름을 가진 신생 벤처기업이 대거 생겨났고 기존 기업들도 이름에 닷컴을 붙이며 투자를 유치했다. ‘닷컴’이 하나의 투자 성공 공식처럼 인식되며 1999년 8조원이던 코스닥의 시가총액은 1년 만에 96조원으로 늘어났다.

이 시기 버블은 현재 네이버, 카카오 등 대표 IT기업을 만드는데 기여했다. 하지만 성공한 기업보다는 소리없이 사라진 회사의 수가 더욱 많다. 포털만 하더라도 야후코리아, 라이코스, 엠파스, 파란, 첫눈, 코리아닷컴 등 치열한 경쟁을 벌이던 기업들이 모두 사라졌다. 개별 포털 안에서 운영되던 서비스까지 따진다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4차 산업혁명 핵심 기술로 떠오른 블록체인도 마찬가지다. 이더리움, 에이다, 퀀텀, 비체인 등은 포털처럼 플랫폼 역할을 한다. 이들 플랫폼을 기반으로 특정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유틸리티형 블록체인도 무수히 생성되고 있다.

플랫폼을 자처하고 나선 블록체인들의 미래는 네이버, 카카오가 될 수도 있지만, 라이코스, 야후코리아, 엠파스가 될 수도 있다. 개별 블록체인에 실린 서비스 역시 마찬가지다. 무수한 서비스가 생겨날 것이고 블록체인 내외의 서비스들과 치열한 경쟁이 벌어질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다.

누구도 그 미래는 알지 못한다. 다만 한 가지 추측은 할 수 있다. 대체제가 충분한 서비스는 그렇지 않은 서비스에 비해 더욱 가혹한 경쟁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블록체인 기반 콘텐츠 플랫폼 '스팀잇'은 비슷한 성격의 후발 블록체인 서비스들과 경쟁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페이스북, 트위터, 온라인 커뮤니티, 인터넷 카페 등도 여전히 스팀잇의 존폐를 위협하는 경쟁자다.

업계에서도 이러한 위험 부담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시도되고 있다. 이더리움을 만든 비탈릭 부테린은 DAO(분산형 자율조직) 개념과 ICO를 결합한 ‘다이코(DAICO)’를 제안했다. ICO와 동일하게 투자가 이뤄지지만, 회사가 출금할 수 있는 자금 한도를 투자자들이 정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투자자들 사이에서 개발이 이뤄지지 않거나 경쟁자가 너무 강력해 프로젝트가 실패할 것 같다는 판단이 내려질 경우 기존에 투자한 자금을 회수하는 것도 가능하다.

블록체인이 세상을 바꿀 기술이라는 점에는 많은 이들이 동의한다. 블록체인 기술이 제2의 구글, 제2의 아마존, 제2의 네이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관련 제도조차 미비할 정도로 갓 생겨난 시장이기에 어떤 플랫폼과 서비스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사용자와 투자자 모두 신중해야 하는 까닭이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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